이태원,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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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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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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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10월 말일은 악마가 잠시 지옥으로부터 풀려난다는 ‘핼러윈’ 날이다. 기성세대에겐 낯설지 몰라도 요새 젊은층들에게는 제법 손꼽아 기다려지는 명절(?)로 자리 잡았다. 이날의 현란한 악마 분장은 세상에 출현할 악마들을 피해 살아남기 위한 수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난은 악마가 가져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대단한 악이 아닌 사람들의 소소한 이기심일지라도 그것이 한날한시, 작은 골목길에 집중되다 보면 악마의 출현 없이도 큰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큰 충격에 앞으로도 한동안 이태원은 10월의 비극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사실 이태원이라는 지역은 참 미스테리한 곳이다. 서울 지도를 펼치고 그 한 가운데를 가리킨다면 어디가 될까? 사람들은 아마도 종로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종로는 한수지북, 즉 한강 이북의 중심일 뿐이다. 반경 15킬로미터의 원에 해당하는 서울의 중심은 의외로 이태원이다. 하지만 이를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의 정중앙이면서도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 숨은 장소처럼 취급되어 왔기 때문이다.

우선은 자연 지형이 원인이다. 이태원은 도심부인 북쪽의 종로, 명동으로부터 불과 2킬로 남짓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사이를 남산이 가로막고 있어 접근은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남쪽과 동쪽으로는 한강이 굽이치면서 강남지역과의 연결을 막고 있다. 물론 서쪽의 용산과는 평지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알다시피, 조선조 이래 용산은 외국 군대의 주둔지로, 산과 강만큼이나 통과가 어려운 장벽으로 자리 잡아 왔다. 서울의 정중앙이면서도 동서남북 모두 가리어진, ‘기막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구한 사연도 있었다. 조선조 때 만들어진 이태원이라는 지명은 ‘이방인들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분히 민족적 수치심이 담긴 지명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에게 이곳은 발걸음이 내키지 않는 땅으로 인식되었을 수밖에. 이 지명의 의미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유효한 것 같다. 최근에는 홍대입구에 약간 밀린 감도 있지만, 여전히 이곳은 한국 속의 외국이요, 외국인들의 해방구와 같은 곳이다.


이태원이 이런 고립된 금단의 지역과 같은 이미지를 버리고 내·외국인 모두가 즐겨 찾는 명소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것은 이천년대 이후이다. 서쪽을 가로막던 용산이 주상복합 타운으로 재개발되고, 미군기지는 거대한 공원으로 전환되어 갔다. 거기에 때마침 찾아온 글로벌 시대가 국적과 인종의 경계를 살살 지워가면서, 이태원은 피해가야 할 ‘이방인의 땅’이 아닌, 온갖 다양성을 맛볼 수 있는 글로벌 테마파크처럼 변해간 것이다. 거기에 SNS의 성지라 할 수 있는 ‘경리단길’까지 등장하면서 이태원의 열기는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형태상으로 본 이태원은 남산 자락에 자리 집은 평범한 상권에 불과하다. 이번 비극의 배경이 된 해밀턴호텔 옆길만 해도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 불과하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평범한 저층주택이 대부분이다. 넓은 평지에 고층건물이 즐비한 종로나 강남에 비견될만한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이런 불리한 여건들이 오히려 이태원을 다른 도심과는 다른, 일종의 대안적 도심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자유로이 오가는 거리, 구석구석 자리 잡은 이국적인 레스토랑과 카페가 만드는 분위기는 오직 이태원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감성으로 자리 잡는다.

눈치챘겠지만, 오늘날 우리의 자녀인 MZ 세대들이 바로 이런 소소한 다양성이 주는 감성에 홀딱 빠져 있다. 그래서 핼러윈, 그것도 이태원에서의 핼러윈이라면 이들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절묘한 시·공간 조합이다. 이태원 핼러윈이 세계적으로까지 유명세를 타면서 매년 인파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게다가 코로나로 잠시 막혔던 봇물까지 터졌으니, 그 좁은 골목길에 수백 명이 끼이는 사태도 현실이 되고 만다.

결국 비극은 벌어졌다. 항상 사후에 눈물로 분노하곤 하는 우리 기성세대는 이번에는 또 어디서 문제를 찾게 될까. 따지고 보면 출처 불명의 서양 축제를 가져와 유행시키는 것도, 남산 자락 좁은 내리막길을 사람이 몰리는 명소로 만든 것도 다 마음에 안든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탓하기는 애매하기에, 결국은 공권력을 탓하는 가장 쉬운 엔딩을 역시 다들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이런 고백은 했으면 한다. 설날도 크리스마스도 아닌 시월 말일에 그런 인파가 몰리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이다. 더구나 그중에 우리 자녀들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세대 간 몰이해는 지난 세기의 자녀가 어느덧 부모가 되어버린 이번 세기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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