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덕 포항시장
지방 도시의 연합은 필수불가결
산업 중심도시 포항
역사·문화 중심도시 경주
가장 이상적인 도시구조
실질적인 환동해 중심도시 가능
저출산 고령화 시대 대비하는 도시 간 동맹
최근 들어 도시 간의 ‘협력’, ‘연합’, ‘동맹’이라는 개념어가 지방 도시마다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마산, 창원, 진해가 도시합병을 통해 통합창원시로 거듭난 것과는 다른 의미다. ‘도시연합’은 행정적으로는 독립성을 가지되 서로 협력할 것은 함께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이해관계다.
국가나 도시 간의 연합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왔다. 이는 주로 경제적 공동체라는 의미보다는 외세 침입을 막거나 침공을 위한 생존 전략으로서 맺은 연합이 주를 이룬다. 현대사회에서 도시연합은 성장기에 놓인 도시에 드라이브를 걸기보다는 쇠퇴기에 놓인 도시를 추동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성장세에 있는 도시 간의 연합은 큰 의미가 없다. 지방 도시 쇠퇴는 인구감소가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인구는 곧 생산력이다.
우리나라는 1996년 OECD 회원국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도 저출산 고령화 문제와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도시의 존립마저 위협하는 복잡한 문제를 낳고 있다. 중앙과 지방 정부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보지만 뚜렷한 성과는 보지 못했다. 이처럼 인구문제는 잠정적으로 지방 도시의 소멸을 의미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의 수명 또한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출산 고령화로 도시의 생산력이 급속히 떨어진다. 이런 현상을 지속하면 지방 도시 대부분은 생산력이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전국 지방 도시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문화 동질성이 도시연합 가능성 높인다
도시연합은 세계 여러 나라가 명칭만 다를 뿐 나름의 형식을 구성하고 있다. 유럽 평의회(The Council of Europe)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 일었던 통합 운동이 실현된 최초의 통합 기구다. 처칠이 유럽 합중국을 제안함으로써 1949년 처음 10개국이 주축이 되어 설립하였지만, 현재는 47개국이 참여해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유럽의 국가 간 협력체로 성장하였다. 이 유럽 평의회 47개 회원국 중 28개국 전부가 유럽 연합(European Union) 회원국이다. 유럽의 경제적 공동체인 유럽 연합의 탄생 배경에는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점과 같은 언어문화권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언어가 같다는 것은 문화적 동질성이 강해 정서적으로 서로 가깝다는 의미다. 사회심리학자 쿠르트 레빈(Kurt Lewin)은 장이론(Field Theory)을 통해 인간의 생활 장(場)이 서로에게 얼마나 의존적인지 말한다. 유럽 연합은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심리적 에너지장을 구성하였고 이는 인간 행동과 의식마저 좌우하는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공존하게 했다. 장(場)은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때로는 문화적 충돌로 인해 이질적이거나 유사한 문화는 서로 흡수하거나 사라지게 한다. 그런 이유에서 장은 집단이 동질성을 가지게 하는 기제(機制)로 작용한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자 옥스퍼드대학교 뉴칼리지 명예교수인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는 그의 저서《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이라는 문화 전달 개념을 처음 등장시킨 학자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DNA가 스스로 복제하여 세대를 이어가는 것처럼, 문화 또한 생물체처럼 말과 문자를 매개로 세대와 장을 넘어 전파하는 것을 밈(meme)이라 정의하였다. 인간의 언어는 그 자체가 문화라는 점에서 같은 언어문화권에서는 정서적 유사성을 가진다. 이것으로 볼 때 국가나 도시 간 연합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은 첫째, 지리적으로 서로 국경이 맞닿아 있어야 하고, 둘째, 언어, 문화, 정서적 동질성을 가져야 한다.
도시연합 사례 외레순 클러스터가 주목받는 이유
외레순 지역(Øresund Region)은 스웨덴과 덴마크의 접경지역인 그레이터 코펜하겐(Greater Copenhagen)으로 알려진 대도시 지역의 일부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스웨덴의 도시인 말뫼, 룬드, 헬싱보리와 덴마크의 코펜하겐, 오덴세, 로스킬데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상호 초월적인 지역협력 정책을 성공시키면서 ‘외레순 클러스터’로 불리는 곳이다.
‘외레순 클러스터’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스웨덴과 덴마크의 국경을 연결하는 외레순 다리(Øresund Bridge) 때문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스웨덴의 말뫼는 산업적으로 집중된 지역인 만큼 탈산업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스웨덴의 말뫼는 우리에게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제철산업이 전부인 도시였다. 그런데 세계적인 불황으로 제철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양쪽 정부가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당시 말뫼의 산업 고용률은 급속히 감소해 지역 내 인구가 35,000명이나 감소했다. 두 국가는 외레순 지역에 경제적, 행정적, 제도적, 기술적 장벽을 없애는 도시연합을 구성하고 1991년 국경을 개방하는 교량 건설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이 프로젝트는 1995년에 시작해 2000년에 완공되어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스웨덴의 말뫼가 철도와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2018년 외레순 지역의 인구는 0.8% 증가했고 2019년에는 4백만 명의 주민이 이 지역에 거주하게 된다. ‘외레순 클러스터’는 스웨덴과 덴마크 국내 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며 마침내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다. 외레순 다리는 두 정부가 공동으로 소유한 국영 기업인 외레순브로 콘소르티에(Øresundbro Konsortiet)가 건설하여 소유·운영한다. 두 국가의 화물 운송량 절반이 이 다리를 이용하고 매일 75,000명이 다리를 통해 이동한다. 연간 70억 파운드의 경제적 이득을 외레순 지역에 제공하고 있다.
외레순 클러스터의 성공 비결은 첫째, 두 국가가 비슷한 시점에 인구 유출과 산업, 경제적 위기를 한꺼번에 겪으며 일종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다는 점이다. 둘째, 그 해결 방안을 내부보다는 외부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두 국가의 국경인 외레순 해협의 국경 개방과 교량 건설이 절실했다는 점이다. 외레순 지역은 두 국가의 중간 지대라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았으며 공동의 인프라 개발이 가능했다. 셋째, 두 국가는 언어·문화·경제·산업에서 교집합을 이룬다. 이런 이점이 국경을 초월하는 경제공동체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산업도시 포항, 역사·문화도시 경주 이상적인 조합
이강덕 포항시장은 최근 지방 도시의 이슈로 떠오르는 도시연합에 대해서 남다른 신념을 밝혔다. 울산광역시·경주시·포항시가 연합하는 ‘해오름동맹’이든, 포항시·경주시가 ‘형산강 경제권’을 구성하든 기본적인 큰 틀에서는 도시연합을 찬성한다. 도시연합을 통해 포항의 경제적, 산업적 체질을 탄탄하게 만들고 인구 유출과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사회적으로 취약한 부분에 대해서는 선택과 집중해 투자하겠다는 것이 이강덕 포항시장의 신념이다. 특히 포항과 경주가 스웨덴과 덴마크의 사례처럼 중간지역인 ‘외레순 클러스터’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듯이 두 도시가 먼저 도시연합의 구체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도시연합은 도시 간 유·불리에 대한 합의가 우선이라는 점에서 세 개 보다 두 개 도시가 협상을 이끌기에 더 수월하다는 말이다.
포항과 경주는 역사적으로 같은 문화권이었다. 지금도 형산강은 두 도시의 매개체로서 문화·산업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도시는 강(江)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이를 통해 하나의 거대한 문명권을 이루었다. 그런 이유에서 강은 생명이자 산업이며 서로 다른 문명과 문화가 만나는 교역의 장(場)으로서 역할을 했다. 형산강은 대한제국기까지만 해도 경주의 강동면 국당리에 ‘위 부조’, 포항의 연일읍 중명리에 ‘아래 부조’라는 각각의 시장이 있었다. 이 두 시장은 당시까지만 해도 육지교통의 불편을 대신해서 내륙과 해안을 잇는 중요한 교역 거점이었다. 이것이 바로‘부조시장’인데 조선의 3대 시장으로 알려질 만큼 남쪽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교역이 일어난 시장이다. ‘부조시장’은 포항의 수산물과 경주의 곡물이 형산강을 통해서 만나는 중간지역이었다. ‘외레순 클러스터’가 스웨덴과 덴마크의 국경인 외레순 해협에 교량 건설을 합의하면서 중간지역인 외레순을 중심으로 도시연합을 구성한 것처럼 포항과 경주의 도시연합 또한 경계지점이자 중간지역인 강동이 지경학적 적합성과 역사적 당위성이라는 측면에서 거점으로서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들이 처한 미래는 이미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해결책을 지역 내부에서 찾지 못한다면 외부와 협력할 수밖에 없다. 산업 중심도시 포항과 역사·문화 중심도시 경주는 도시 규모마저 비슷해 가장 이상적인 상호 보완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계속)
김용진
·디자인학 박사
·위덕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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