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개 봉토분 흔적따라 잊혀진 ‘대가야’ 되찾는다
  • 권오항기자
수천개 봉토분 흔적따라 잊혀진 ‘대가야’ 되찾는다
  • 권오항기자
  • 승인 202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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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 대가야 500년 역사 산증인
‘지산동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눈 앞
주산 가지능선 따라 중·소형분 분포
현재까지 706기 발견… 수천개 예상
대가야고분 특징 ‘순장자 단독석곽’
북쪽 구릉 대형분, 최고지배층 차지
지산동고분군
대가야박물관

러시아가 유네스코(UNESCO)세계유산위원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혀 러시아에 이어 의장직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맡을 전망이라는 최근의 외신보도에 따라 고령군 지산동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에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각)르몽드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유네스코 러시아 대사는 전날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에 서한을 통해 의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지난 6월19일부터 30일까지 러시아 카잔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가 무기 연기 된 가운데 차기 의장국이 정해지면, 내년 상반기에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지난 2013년 일찌감치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고령군 지산동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본 등재 여부가 결정날 전망이다.

본지는 이 같은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내년 회의를 주목하면서 그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쳐온 고령군 세계유산추진 과정과 지산동고분군을 소개한다.

▲고령 지산동고분군과 대가야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5~6세기에 걸쳐 축조된 대가야 지배층의 집단묘역이다. 대가야는 기록에 따르면 기원후 42년 시조 이진아시왕이 건국하여 562년 신라에 멸망하는 도설지왕대까지 520년간 존속했다고 전한다. 그 중심은 현재 경북도 고령군이었으며, 고령군은 대가야 멸망 이후 대가야군(大伽倻郡)을 두었다가 신라 경덕왕대(757) 고령군(高靈郡)으로 개칭하였음을 『삼국사기』지리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지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각종 역사서를 통해 볼 때, 당시 대가야는 ‘가라(加羅)’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고, ‘대가야’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기록에서부터 등장한다.

대가야는 전기 가야사회를 주도했던 금관가야가 쇠퇴한 이후 5세기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후기 가야사회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6세기가 되면 그 영역이 합천, 거창, 산청, 함양, 남원, 장수, 여수, 순천까지 뻗었던 것이 확인되는데, 이는 대가야양식의 묘제와 토기, 장신구 등이 주변으로 확산되는 고고학적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대가야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5~6세기에는 가야권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지산동고분군을 축조하였고, 가야 북부지역과 섬진강유역에 이르는 광역의 영역을 확보하였으며, 당시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던 중국(남제)에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내어 보국장군 본국왕(輔國將軍 本國王)에 제수(479)되는 등 국제무대에까지 진출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대가야가 비로소 고대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요소들이다.

대가야는 562년 신라 진흥왕에 의해 멸망하였으며, 신라는 대가야를 멸망시킨 후 대가야군을 설치하고 지배세력을 해체시키는 등 대가야를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기 시작한다. 지산동고분군에는 대가야멸망(562) 이후 더 이상 가야고분이 축조되지 않으며, 대가야를 점령한 신라의 고분만이 축조된다. 멸망한 대가야의 고분문화는 뜬금없이 강원도 동해시의 추암동고분군에서 확인된다. 이러한 모습은 대가야 지배세력을 와해시키고자 실시한 신라의 사민정책*의 흔적으로 풀이된다.

이렇듯 대가야는 주체적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으며, 역사의 패자로서 그 역사가 철저히 지워지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우리는 각종 문헌자료와 고고자료를 통해 그 역사를 복원하고 있으며, 지산동고분군을 비롯한 각종 유산들이 큰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산동고분군의 발굴조사

지산동고분군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조선시대 전기에 작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고령현 고적조이다. 여기서 ‘현의 서쪽 2리 남짓 되는 곳에 옛 무덤이 있는데, 세간에서는 금림왕릉이라고 일컫는다(원문)’고 기록한다. 이때부터 이미 지산동고분군을 왕릉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초의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 동경제국대학 교수 세키노 타다시가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실시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동안 8차례 정도 조사가 더 진행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지산동고분군은 비롯한 가야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식민사관인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발굴조사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아, 발굴조사된 고분의 위치조차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유일하게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이 금림왕릉 즉 현 5호분(구 39호분)인데, 지산동고분군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가장 큰 규모의 고분이다. 이마저도 발굴조사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발굴조사사진과 출토유물 일부가 전해질 뿐이다.

해방 이후 국내에서의 가야사 연구는 당시 민감했던 일제의 식민사관인 임나본부설의 영향으로 한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러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이듬해인 1963년 1월 21일 사적 79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대 후반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가야문화권 유적보존을 위한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1977년에 지산동 44·45호분이 경북대학교박물관과 계명대학교박물관의 주도로 발굴조사되었다. 특히 44호분은 직경 27m급의 대형분으로 내부에서는 주곽 1기·부곽 2기·순장곽 32기가 확인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순장된 무덤이다. 44·45호분의 발굴조사는 가야사연구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방치되었던 가야사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듬해인 1978년에는 32~35호분이 발굴조사되었으며, 이로 하여금 대가야식 묘제의 정형이 재차 확인되었고, 32호분에서는 가야 최초의 금동관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이후에 30호분과 73~75호분 등 5세기 전엽 즉 지산동고분군 조영 초기에 축조된 고분이 발굴조사되었고, 최근에는 그동안 베일에 쌓여있던 고분군의 남쪽 구릉에 위치하는 518호분과 604호분이 조사되기도 하였다. 남쪽구릉의 고분 역시 북쪽구릉의 것과 마찬가지로 대가야양식의 묘제와 부장품이 확인되는 성과를 거뒀다. 향후에는 그동안 결여되었던 지산동 고분군 내의 5세기 중·후엽에 축조된 고분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고분의 계기적 축조양상를 확인하고, 나아가 대가야문화의 완전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산동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고령 시가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주산(해발 310m)으로부터 남쪽으로 뻗어내린 가지능선을 따라 조영되어 있는데, 능선의 정상부는 대형분이 입지하고 그 주변으로는 중·소형분이 분포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봉토분은 706기에 이르며, 봉토가 남아있지 않은 소형 무덤을 포함하면 그 수는 수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산동고분군은 현재 대가야박물관과 주차장을 기준으로 북쪽구역과 남쪽구역으로 구분된다. 그 사이로는 현재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는데, 과거에는 이를 덕곡재라 하여 고분군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도보로 자연히 만들어낸 길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도로가 포장되어 고분군의 원지형을 파괴하는데 이르렀다. 다행히도 2004년 고령군의 ‘지맥잇기’ 사업을 통해 도로 위로 터널형 교량을 설치하여 끊어진 고분군을 연결하였고, 외곽도로를 개설하여 통행량을 줄이는 등 고분군을 보호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북쪽구역과 남쪽구역의 고분은 크게는 대가야 고분문화라는데서 동일한 양상을 보여준다. 다만 북쪽구역의 구릉은 주산의 주능선에 해당하며, 이곳에 축조된 고분은 남쪽구역의 고분에 비해서 입지와 규모면에서 우월한 면모를 보인다. 더 우월한 입지에 무덤을 축조함으로서 대가야사회에서 지배층의 권위를 과시하고, 사회적 지배관계를 확립하는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고분을 축조하기 위한 노동력의 동원과 경제력의 과시 등 정치적·경제적 집중은 북쪽구릉에 입지한 대형분의 주인공이 대가야 최고지배층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지산동고분군의 묘제는 기본적으로 세장한 형태의 수혈식석곽묘(竪穴式石槨墓)인데, 이는 가야고분군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주피장자가 매장되는 주곽에 인접하여 부곽이 설치되고, 주·부곽 주변으로 순장곽이 배치되며, 다시 그 주변으로 호석이 설치되는 것이 기본 묘형이다. 여기서 대가야고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순장곽이다. 한반도 고대사회에서 순장*은 비교적 흔히 확인되는데, 이러한 경우 대개 매장주체부 혹은 부장공간에 순장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산동고분군의 경우에는 순장자를 위한 단독석곽을 묘역 안에 마련하였는데, 이는 지산동고분군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고분에서만 확인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세계유산등재

세계유산이란 ‘인류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UNESCO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유산’을 말한다. 그중 가야고분군은 문화유산에 해당하며, 이번에 등재된다면 한국의 16번째 세계유산이자 15번째 문화유산이 된다. 지산동고분군은 연속유산*인 가야고분군 중 하나이며, 가야고분군은 고령 지산동고분군을 비롯해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합천옥전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등 7개 가야고분군을 포함한다.

대가야의 유구한 역사성을 담보하는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에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2018년에는 합천 옥전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등 4개의 고분군이 추가되어 가야고분군 유산범위가 확대 결정되었고, 이듬해인 2019년 확대된 7개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이후 2020년 세계유산 최종 등재신청대상에 선정되어 여러 절차(등재신청서 제출·현지실사 등)를 거쳐 향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1000여 개소 이상의 가야고분군이 확인되었다. 수많은 가야고분군은 묘제양식과 토기양식의 분포를 통해 크게 7개의 문화권으로 분류되었고, 고분군의 규모와 위세품 등을 통해 각 문화권의 중심고분군이 확인되었다. 그 중심고분군이 바로 이번 세계유산등재 신청대상인 7개 가야고분군인 것이다.

‘가야’는 500년 이상 한반도 남부일대에 실재했으며,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정치체이다. 아쉽게도 주체적 역사서가 남아있지 않아 가야사를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다행히 단편적으로나마 한·중·일의 여러 문헌에서 ‘가야’의 흔적들이 등장하고, 과거 가야의 범위에서 수많은 고고유적들이 발견됨에 따라 잊혀진 ‘가야’를 복원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가야고분군은 가야의 정치·경제·문화를 복원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세계유산에 등재하여,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후세에 보전해야할 유산이다.

*사민정책 : 정치적 목적에 의해 백성들을 강제이주 시키는 정책

*임나일본부설 : 왜(일본)가 한반도 남부 임나(가야)지역에 일본부를 설치하여 통치하였다는 주장으로 한반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식민사관으로 활용

*순장(殉葬) : 신분이 높은 이가 죽었을 때, 그 사람의 뒤를 이어 강제 혹은 스스로 죽어 그 주검을 함께 매장하는 장례풍습

*연속유산 : 지리적으로 연접하지 않는 각 하위 요소로 구성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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