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권력의 시녀가 아닙니다
  • 이진수기자
예술은 권력의 시녀가 아닙니다
  • 이진수기자
  • 승인 2022.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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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공연장에 정치인들 인사
예술 모르는 그릇된 관행
문화 아름다움은 예술인의
품격과 자존감에서 나온 것
예술인·정치인들의 성찰 필요

 

몇일 전 경북 포항에서 개최된 음악회에 갔습니다.

출연진과 관객들이 많아 모처럼 포항문화예술회관이 꽉찬 느낌이었습니다.

출연진 대부분이 연령이 많았으며 취미로 활동하는 아마추어 합창단이라 음악적 완성도는 다소 부족해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오랜 시간 함께 연습하고 다듬었다는 점에서 신선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주최 측이 애써 노력한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사회자에 의해 포항시 고위 공무원과 지방의원(경북도의원·포항시의원), 지역 문화예술단체장 등 15여 명(타 지역 인사 포함)이 객석 맨 앞줄에서 관객들에게 간단한 인사 소개를 가졌습니다.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나, 이들 가운데 6명 정도가 무대에 올라 대동소이한 각각의 인사말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자가 권유한 것이지만, 음악회 주최 측과 사전 논의된 것으로 보여 공연장이 지역 유력자들의 소개 장소로 변질된 듯 했습니다.

지난해 가을 한 공연장에 포항시장이 나타나자 주최자가 갑자기 ‘000 시장 만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이를 언급한 것은 이들과 무슨 감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친분이 있습니다.

사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주최하는 공연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 같은 사례는 비일비재합니다.

공연 측 입장에서는 시장이나 의원 등 유력 인사들이 참석하는 것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은 어떤가요. 시민들 표를 먹고 사는 이들이라 관객이 모인 공연장을 자신을 알리는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또한 박수받는 것을 은근히 즐기기도 합니다.

여기에 또 다른 내막은 공연 대부분이 지자체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어 지자체와 의회에 잘 보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예술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대부분 정치인들은 공연이 시작되면 일정이 있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자리를 비웁니다.

그러니 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 공감 능력의 부족으로, 예술적인 평가보다 자신과의 친분에 따라 예산 지원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지양돼야 할 부문입니다.

시민들은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3∼4시간(공연시간·교통이동)을 투자하는 것이지, 결코 정치인들을 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의 인사 및 축사는 공공 건물이나 사업의 착공 또는 준공식, 대내외 기관과의 업무협약 체결식,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간담회 등 다양한 행사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포항에서 30여 년 문화활동을 하고 있는 한 단체가 10여 년 전 유럽에 있는 라트비아에 공연을 갔습니다.

라트비아 대통령이 그 흔한 인사 한마디 없이 시민들 사이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에 이 단체 대표 A씨는 큰 감동을 받았답니다.

정치적·문화적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지금까지 많은 공연을 하면서도 정치인 초청은 물론 공연 팜플릿에도 이들의 축사를 넣지 않는다는 A씨는 “공연에 정치인 인사가 왜 필요한가요”라며 오히려 반문했습니다.

예술인은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오롯이 쏟아내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는 것에 가장 큰 가치와 보람을 가져야 합니다.

문화가 아름답고 위대한 것은 예술인들이 정치인, 또는 사업가가 아닌 순수한 문화 주체로서의 품격과 자존감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포항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 지자체의 ‘정치인 인사’라는 그릇된 공연 관행에 예술인과 정치인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예술인 스스로가 권력에 영혼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를 넘어서야 합니다. 예술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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