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冬至) 무렵에
  • 모용복국장
동지(冬至)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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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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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들어 이웃봉사 온정 후끈
동짓날 서로 돕는 전통 이어져
한파 속 팥죽봉사 나선 이들은
나태와 무능, 두려움 떨쳐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사람들
치열한 삶을 사는 모든 이들에
한 해 끝자락서 존경을 표한다

 

모용복 선임기자.
모용복 편집국장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르면서 추위가 극성을 부린다. 한동안 김장철을 맞아 어려운 이웃을 위한 김장 나눔 봉사가 이어지더니 요즘 들어 여기저기서 팥죽 나눔 온정이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다. 추울수록 봉사를 향한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 국민 봉사 정신은 알아줘야 한다.

오늘은 일 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冬至)다. 예로부터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었다. 이날 팥죽을 먹지 않으면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붙는다는 속신이 있었다. 또 동짓날이 되면 일가친척이나 이웃 간에 서로 화합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해결했다.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를 펼치는 풍습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옛날 민간에서는 동지를 작은설이라 했다. 해가 가장 짧은 것은 태양이 부활한다는 의미이므로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한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동지첨치(冬至添齒) 풍속으로 전해지고 있다. 굳이 팥죽을 먹지 않더라도 며칠 후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니 팥죽 못 먹었다고 그리 슬퍼할 일은 아니다.

지난 일요일 퇴근 무렵, 죽마고우 하나가 몇 년 만에 전화를 했다. 오랫동안 보지 않아도 전혀 서먹하지 않는 게 부랄 친구여서 어제 만난 것처럼 편했다. 동네 친구들이 모여 있으니 오라고 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지만 서둘러 일을 마치고 약속시간보다 30분 앞당겨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 나이는 ‘고장난 벽시계’가 된다. 시간이 멈추고 세월도 멈춘다. 수 십 년을 훌쩍 뛰어넘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코흘리개 적 시절로 돌아간다. 날씨가 추워지고 한 해가 저물어 가니 옛 추억이 그립고 옛날 얼굴이 보고 싶은 법이다. 월드컵 결승전도 봐야 하고 마누라 잔소리도 걱정이 됐지만 그날 우리는 술잔에 코를 박으며 그렇게 죽었다.

몇 년 만에 어제 수도권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앞서 번개모임 때 찍은 단체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그는 반가워했다. 그리고 말했다.(사실은 카톡으로 답장을 보내온 것이지만) “어릴 때 고향친구들이 그 긴 시간을 같이 놀아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그리고 다들 건강하라고 전해 달라”고 했다. 코끝이 시려오며 가슴이 먹먹했다. 그의 짧은 말 속에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녹아 있었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나이를 먹으면서 단지 늙어갈 뿐만 아니라 익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때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훌쩍 한국을 떠나 인도에서 몇 달을 체류하다 오곤 했다. 그것도 여자 혼자 몸으로. 주로 인도에 갔으며 겨울에는 일본에도 갔다. 그가 보내온 사진에는 현지 오지마을 주민들과 어울리거나 사막을 걷고 군인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남자들도 해내기 버거운 고생을 왜 사서 하는지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나로서는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지금도 그 심사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농익은 말 속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치열하게 자신과 싸워 왔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동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이웃을 위해 팥죽 봉사에 나선 이들이 있다. 팥처럼 붉은 단심(丹心)과 새알처럼 하얗디하얀 마음. 그들 모두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나태와 두려움을 떨치고 낯선 이국 땅으로 떠났던 그녀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저무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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