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나이
  • 모용복국장
한국인의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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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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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부터 만 나이로 통합
이미 적용해 오던 제도 재확인
체감할수 있는 변화 거의 없어
일상생활 속 문화적 정착 꾀해
한국식나이 생명존중사상 농축
과학 발달할수록 합리성 인정
우리의 소중한 가치 계승 필요

만혼(晩婚)인 나는 ‘만 나이’ 덕을 톡톡히 봤다. 결혼 전 신문사 선배 소개로 맞선 장소에 나온 여성이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당황해서 엉겁결에 “마흔!”이라고 대답했다. 마흔은 만 나이, 정확하게 말해서 연 나이(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뺀 나이)였다.

어느 날 아내가 “나이를 속였다”며 억울해 했다. 그 때 만약 나이를 제대로 말했더라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아내는 마흔이면 만나고 마흔하나면 만나지 않겠다고 선배 쪽에도 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나는 나이를 속이지 않았다. 공식적인 맞선 자리인만큼 법적인 나이를 말했을 뿐. 아내는 지금까지도 내가 나이를 고의로 낮춰 말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식 나이와 서양식 나이 계산법 차이에서 일어난 웃픈 해프닝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나이로 인한 불편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올해 하반기부터는 사라질 모양이다. 오는 6월 28일부터 모든 연령이 ‘만 나이’로 통일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국식 나이와 연 나이, 만 나이의 혼용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혼란과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것이 목적이다.

나이가 적어진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몰라도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대한민국이 젊어졌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로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이번 조치는 법률과 행정에 쓰이는 나이 계산법을 바꾸는 게 아니라 이미 적용해 오던 만 나이 사용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가 노리는 건 제도상 개선이 아닌 일상생활 속 변화다. 만 나이는 이미 1962년 법적인 통일이 이뤄진 상태다. 현재 공공기관을 비롯해 공식적으로 대부분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로 만 나이 문화가 정착돼 제도와 관념이 일치되는 효과를 기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제도라면 몰라도 수천년 동안 내려온 문화를 국가가 나서서 바꾸려 드는 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세는나이(한국식 나이)를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북한 포함)가 유일하다. 예전에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세는나이를 사용했다. 중국에선 문화대혁명 기간에 세는나이 관습이 사라졌고, 일본은 1900년대 초 서양문화를 받아들여 만 나이가 정착됐다.

소위 식자(識者)층들은 한국식 나이 계산법이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산모 뱃속 태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요즘 배내 아이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이유는 없다. 우리시대의 지성 고(故) 이어령 교수는 한국인의 나이 계산법에 대해 이렇게 갈파했다.

“공장에서 나온 물건이라면 출고한 날짜부터 따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스스로 눈·코·입을 달고 나온 아이들은 부품을 꿰맞춘 TV 상자와는 다르지 않겠는가… 인간과 생명과 자연을 보는 차이가 바로 한 살 나이 차이에서 비롯된다. 천년만년 다른 문화와 문명 그리고 앞으로 올 미래의 세월에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최첨단 초음파 기술이라 할지라도 앞 못 보는 심봉사를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생명의 모태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람 눈의 수정체도, 카메라의 렌즈도 아니라는 것. 그것은 오직 생명의 예지를 지닌 ‘마음의 눈’ ‘영혼의 눈’이라는 점이다.”(이어령 ‘한국인 이야기’ 중)

이처럼 세는나이에는 한국인의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과 존중 사상이 깊이 농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단지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우리가 가진 소중한 가치들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은 눈앞의 이익만 좇는 근시안적 처사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한국식 나이의 과학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머잖은 미래에 서구인들이 배내 아이를 사람으로 인정해 한국식 나이를 사용할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 봐야 한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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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 2023-01-10 21:28:14
공감안되는 글이네요 글로벌 상황에 놓여진적이 있다면 한국식 나이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깨닫지못할리가 없는데,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나이법에 대해 쌩뚱맞게 근시안적이고 눈앞의 이익만 좇는 처사라니요? 뭐가말이죠? 벌써 스물다섯이라서 벌써 서른이라서 등등의 이유로 타인의 말에 상처입거나 도전을 포기한 수많은 이들의 잃어버린 가치는 비용으로 환산하기도 어렵습니다 또한 아동인권에 대해 선진국대비 더 월등하지도않은 나라에서 유독 뱃속의 태아는 유일하게 존중하는냥 태어나면 무조건 한살! 생색도 웃기죠 그럼 12월31일생은 두배로 존중해서 다음날 두살로 더블이 되는건가요? 1월1일이 되면 전국민에 나이 먹이고 줄세워 동갑 아니면 친구도 못하는 나라가 된거 나이 제도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정상으로 돌아가는듯해 다행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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