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기대 읊조리던 흥해민요… 전승·보급 힘써야 할 때
  • 신동선기자
기억에 기대 읊조리던 흥해민요… 전승·보급 힘써야 할 때
  • 신동선기자
  • 승인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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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노동요 78편중 48편 차지
가창·계승자·지역색 명확하고
동해안 메나리토리 특성 뚜렷
전문가, 흥해민요 보존 우수
‘향토문화재 유산’ 가치 충분
지역사회 행정적 뒷받침 절실
현흥해농요보존회 회원들이 농요 열마당 재연한 뒤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흥해농요보존회 회원들이 현장 농요를 재연하고 있다.

 


‘첩으 사랑은 삼일 사랑 본처 사랑은 백년 보배

화촉병풍을 첩액을 박아 각기장판을 곱게 쓸라

유이불을 피아놓고 잣비개는 돋이게 비고

샛별 같은 저 요강은 발체마중도 던제 놓고

누불 때는 두 몸인데 눕고보니 한 몸이라

조선낙화가 어데 있노 조선 낙화가 여기로다‘…’



지난 5일 정월대보름, 흥해읍 북송리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아름다운 우리가락이 흘러나왔다. 눈을 지그시 감고 심금을 적시는 민요에 푹 빠져 감상하던 한 어르신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평소에도 치매에 걸린 아내를 위해 이 민요를 자주 부르곤 했다는 그는 힘든 환경에서 함께 살아온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진 것이다.

이날 마을에서 울려퍼진 민요는 국악인이자 흥해농요보존회장인 박현미 씨가 부른 ‘지신밟는소리’ 일부다. 모두 44개 소절로 이뤄진 이 민요는 북송리 마을 주민인 김선이(95)를 가창자로 한다. 2018년 6월 고령에도 기억력과 가창력이 탁월한 그가 들려준 이 노래는 흥해농요보존을 위해 채록됐다. 정월대보름, 마을에서 지신밟기 할 때 남자들이 부르는 긴 노래로서 기억에 의지해 조용한 목소리로 부른다. 농사가 시작될 무렵인 정월 대보름, 액운을 물리치고 풍련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부른다.

지신밟기는 대보름날 민가를 돌면서 마루, 부엌, 우물, 장독, 축사, 두지 등 여러 장소에서 치러지며, 의식을 치르는 장소에 따라 그에 맞는 사설로 이뤄진다. 노래는 지휘자인 상쇠(꽹과리를 치며 앞에서 지휘)가 앞소리꾼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 꾼으로 선후창을 구분한다. 뒷소리꾼은 사설 없이 풍물소리로 대신한다. 이는 흥해 농요만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지신밟는소리’는 성주풀이 내용을 다고 있고, 보통 안동제비원에서 받아온 솔씨를 뒷동산에 흩여서 소나무를 키우는 내용으로 시작되지만, 여기서는 강남제비가 물어온 솔씨를 뒷동산에 흩여서 키우는 것으로 노래가사가 전개된다.

흥해지역 민요의 자료현황을 살펴보면, 노동요 92곡, 의식요 10곡, 유희요 30곡 등 모두 132곡이 채록돼 민간 단체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

흥해농요보존협회에 따르면 흥해 민요의 최초 자료는 포항문학 7호에 게재된 ‘포항영일지방의 민속문화’로 죽천리에서 채록된 모심기, 그물당기기, 멸치잡이그물당기기 등이다. 노동요만을 집중 수집한 자료는 박창원의 ‘포항지역 노동요’ 78편이 전해진다. 이 중 흥해민요는 48편으로 알려졌다.

흥해지역 민요만을 모아 집대성한 자료로 ‘흥해의 민요’가 있다. 1990년대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보리타작소리 등 박창원이 채록한 자료와 2018년 박현미가 채록한 지신밟는소리, 상여소리 등이다. 이들 흥해 민요는 ‘한국민요대전 경상북도편’에 수록됐다. 부록인 음원자료에는 흥해농요를 대표하는 10곡에 대한 음원과 악보가 실려 있다는 게 이 자료의 가장 큰 특징이다. 흥해 농요의 조상격인 가창자 김선이의 노래만을 수록한 ‘김선이의 흥해농요’ 가 있다. 모찌는소리, 나물캐는소리, 물레소리, 베짜는소리, 과부신세타령, 비야비야, 월월이청청 등 1990년 채록한 김선이 소리 15곡을 수록과 함께 해설집도 보관하고 있다.

가창자가 직접 부른 민요를 녹음해 보관되고 있는 지역은 흥해 민요 외에는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이로부터 박현미에 이르기까지 흥해민요의 뚜렷한 계보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흥해농요를 대표하는 7종목으로 어사용, 지게목발소리, 모찌는소리, 모심는소리, 논매는소리, 물푸는소리, 치이야칭칭나네 등이 있다. 이들 농요를 음악적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형적인 메나리토리의 특성을 지녔다. 메나리토리는 강원도나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불리는 논매는 소리인 ‘메나리’에서 음악적 용어인 ‘토리’를 붙인 말로서 주로 우리나라 동부지역에서 보이는 전통음악의 특징을 지칭하는 말이다. 동부토리라고도 한다. 흥해농요를 분석해온 유대안 계명대 교수는 지난 2021년 열린 농요심포지엄에서 흥해농요는 영남권 메나리토리 음악적 특성이 반영됐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적 특성에 의해 이 방식이 잘 보존됐다고 평가했다.



◇ 흥해의 소리꾼 김선이와 최화식, 계승자 박현미와 흥해농요보존회의 출범

1990년대 흥해지역 민요는 북송리와 죽천리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2곳은 흥해 민요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다양한 민요 형태가 잘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들 지역의 가창자는 모두 11명, 이 중 주목받는 가창자는 북송리 김선이와 최화식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김선이에게 채록한 곡수는 70곡이 넘는다. 채록자에게 들려준 그의 민요만도 노동요 43곡, 의식요 4곡, 동요13곡을 포함한 유희요 27곡이다. 민요학계는 가창자 1인에 의해 이러한 많은 곡을 다양한 장르에서 전승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봤다.

김선이(1927년생) 가창자는 구룡포에서 태어나 17세 때 혼인해 북송리에 정착했다.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여성들이 부르는 민요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강점을 지녔다. 목소리가 맑고 정확한 음정과 발음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 95세로 생존한 가창자이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행사에서 자리를 빛내주고 있다.

흥해 민요 보급과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였던 또 다른 가창자는 지난 1995년 작고한 최화식(1923년생)이다. 그가 채록한 민요는 모두 53곡으로, 노동요 49곡, 의식요 2곡, 유희요 2곡이다. 그는 포항 신광면 출신으로 포항에서 역무원을 하다가 사고로 그만두고 40대에 북송리에 정착했다. 노동요를 중심으로 보통 가창자와 차별화된 노래를 불러 사랑을 받았다. 북송리 풍물패 상쇠로서 타고난 신명과 끼를 가진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김선이와 교환창으로 부르는 모심는소리가 일품으로 꼽힌다. 교환창은 앞소리와 뒷소리가 끊김 없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흥해 지역 민요만의 특징으로 손꼽힌다.

지난 2018년 4월 흥해농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포항흥해농요보존회’가 출범했다. 이 단체는 동해안 최대 곡창지로서 민요가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는 흥해 지역의 농요를 보전과 전승하기 위해 국악인 박현미 주도로 설립됐다. 흥해농요경창대회, 학술심포지엄, 자료집 발간, 농요의 현장재연사업,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특히, 박현미 농요보존회장의 행보가 주목을 끌었다. 학교에서 교사로 10여 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연간 40여 차례에 이르는 ‘흥해농요배우기’ 무료강좌를 진행하는 한편, 마을행사와 각종 공연을 통해 최 일선에서 흥해 농요를 보급하고 전승하는데 힘썼다. 그를 중심으로 흥해농요를 지역향토문화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 지역 향토문화재 유산으로 가치 흥해 농요

현재 경북지역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민요는 안동저전동농요(安東苧田洞農謠), 예천공처농요(醴泉公處農謠), 상주민요(尙州民謠), 청송추현상두소리(靑松楸峴), 구미발갱이들소리, 문경모전들소리 등 7곡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메나리토리 방식에 뒷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경북 동해안 지역적 특유의 민요는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바가 없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경북 동해안 특색을 잘 보존하고 있는 흥해 농요를 지역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학계와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이어져 온 민요보존을 위한 행정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코로나19로 대면접촉이 어렵던 지난 3년간 지역 민요를 전승 보급하기 위한 노력은 이어져 왔다. 특히 지난 2021년 포항흥해농요보존회가 주관하고 소리마당국정국악원과 한국아이국악협회 포항지부 등이 후원한 ‘흥해농요 학술 심포지엄’은 민요와 민속 문화를 연구하는 각계 전문가들이 입회한 자리에서 흥해 농요가 무형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학계에 알리는 중요한 자리가 됐다. 이 자리에서 박현미 회장과 보존회 회원들은 흥해 들녘에서 부르던 농민들의 삶을 그린 농요 재연으로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정서은 경북도 문화재전문위원은 ‘포항흥해농요의 무형유산적 가치연구’에서 흥해 농요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가창자들로부터 확인하고, 흥해농요보존회의 역할을 기대했다. 특히 현장을 떠난 농요가 지역민의 향토민요 교육 등을 통해 원래 모습을 되살리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 흥해농요보존회의 노력을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그는 경북도의 무형유산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어른들의 삶을 기록화 하는 노력과 민요를 활용한 지속적인 다양한 시도를 주문했다.

권태룡 한성대 교수(한국아이국악협회 협회장)는 포항지역 최초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뒷받침을 강조했다.

포항 민요의 채록과 전승에 앞장서온 박창원 동해안민족문화연구소장은 흥해농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기반을 다져왔음을 강조한 뒤, 앞으로의 과제로 지속 가능한 흥해 농요를 위해 포항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흥해농요의 체계적인 보존 전승은 지역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줄 것이라며, 무형문화재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계기로 흥해농요 보급에도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는 흥해농요의 최고 가창자인 김선이 기능보유자가 생존해 있고, 채록된 130여 곡의 보존된 자료는 지역 농요의 무형문화재 지정에 유리한 조건으로 꼽았다. 이를 위해 주민과 지자체가 합심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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