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층·유명인 학폭 단죄는 정의실현 시금석
  • 조석현기자
고위층·유명인 학폭 단죄는 정의실현 시금석
  • 조석현기자
  • 승인 20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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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과거의 일 아니다 ① 피해자 두번 울리는 유명인 학폭
‘불트’ 황영웅·국수본 정순신 아들 학폭논란으로 낙마
피해자 용서 없이 가해자 대중활동은 사회정의에 위배

최근 들어 우리사회를 후끈 달구고 있는 이슈 중 하나가 ‘학교폭력’이다. 학교폭력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연예계, 정치계에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작지 않다. 경북도민일보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우리사회에 만연된 학교 내 폭력 현황을 살펴보고 대책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지난해부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학교폭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가 서른이 넘은 나이에 남은 인생을 모두 걸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이 겪은 아픔에 공감하고 복수에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이는 드라마일 뿐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 피해자들은 어른이 돼서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반면 가해자들은 과거 자신이 한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애써 외면한 채 오히려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잘 사는 경우가 많다. 최근 MBN 가요경연 프로그램인 ‘불타는 트롯맨’ 결승전에 진출한 황영웅 씨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그런 경우다.

논란의 중심에 선 황 씨는 ‘불타는 트롯맨’ 결승전을 앞두고 “저의 부족함과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 깊이 사죄드린다”며 “부디 과거를 반성하고 보다 나은 사람으로 변화하며 살아갈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사과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난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황 씨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던 시기에 이번에는 정치권에서 학폭논란이 터져나왔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고등학생 시절이던 2017년 동급생에게 8개월 동안 언어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피해 학생은 정 씨와 마주칠 때마다 극심한 불안 증상을 보이다 자살 시도까지 하는 등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웠다.

문제는 학폭뿐만 아니었다. 당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정 씨에게 강제전학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검사 신분이었던 정순신 변호사는 아들 정 씨의 강제전학 처분이 지나치다며 재심과 행정소송,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의 법적 수단을 모두 동원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지만 1년여간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정 씨는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 신분을 유지하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3학년이 되기 직전인 2019년 2월에야 전학을 간 뒤 2020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했다. 학폭위 조치가 집행되는 걸 늦추기 위해 고의로 소송을 진행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월 28일 국회 교육위원회 강득구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서 제출받은 ‘불복 절차 관련 가해자가 제기한 학폭 행정소송 건수 및 결과’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8월 사이 가해자가 제기한 학폭 행정소송 건수는 총 325건으로 승소 건수는 57건이었다. 승소율은 17.5%에 불과하다.

지역별로는 대전의 경우 가해 학생 측에서 10건의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단 1건도 승소하지 못해서 승소율 0%를 기록했다. 경기(8.3%), 부산(8.3%)은 승소율이 10%도 되지 않았다. 대구(11.1%), 충북(11.1%), 세종(14.3%), 경북(15.0%), 충남(18.2%), 경남(18.4%), 전북(18.7%), 서울(19.0%) 등 8곳의 승소율도 20% 미만을 기록했다.

이처럼 승소율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가해 학생 측이 소송을 제기하는 데에는 징계 집행을 지연시키기 위한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소송 본안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생활기록부에 학폭 기록을 기재할 수 없어 대학입시 등 진학에서 불이익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소송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명인들 학폭에 대한 사회적 지탄과 비난이 과하다고 말한다. 이번 황영웅 씨 팬들도 그가 경연 프로에서 도중하차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황 씨의 하차가 부당하다며 “사춘기 시절 잘못으로 현재 실력으로만 겨루는 경연에서 기회를 박탈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팬들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스타가 한 순간에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현실이 슬프게 다가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학창시절 때 일이라 해도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도, 구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는 건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나 다름없다.

사회 정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피해자에 대한 치유 노력과 잘못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오래 전 일이라고 무조건 범죄행위를 용서해 준다면 우리사회는 무법천지나 다를 바 없다. 학폭 피해자는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하고 가해자는 아무일 없다는 듯 잘 산다면 법과 정의가 존재하는 이유를 의심해 봐야 한다. 학폭에 경중이 있을 수 없지만 스타들의 폭력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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