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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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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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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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의 3대 정신이 있다. 첫째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책임과 의무) 정신이다.

즉 귀족은 귀족답게 행동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명성과 신분에 걸맞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연대와 책임의식이다.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에는 데모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즉 연대와 결속 즉 박애 정신이다. 셋째, 톨레랑스 정신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관용의 정신을 말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정신이다. 즉 차이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관용은 처음 종교에 대한 자유 개념에서 시작되었다. 종교계에 관련된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자기와는 다른 종교를 거부하거나 배격하기 쉽다. 하지만 칼빈,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타 종교에 대한 관용 정신이 생겨났으며, 이후 이어진 시민혁명에 의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즉 피부 색깔, 언어, 신체, 종교, 사상, 성 등 여러 차이에 대해서 차별이나 무관심이 아닌, 서로 다른 점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을 말한다.

우리 시대는 관용(寬容)의 정신이 아쉽다. 관용은 온유한 마음이다.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상대방에 대하여 참아내는 마음이다.

우리 주변에는 견디기 힘든 상대가 많다. 친구나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이 더욱 그렇다. 생각도 다르다. 느끼는 감정도 다양하다. 따라서 갈등과 다툼이 있게 마련이다. 때로는 미움과 증오심이 쌓인다. 한순간 분노가 폭발하기도 한다. 관계가 일순간 금이 가고 깨지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관용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도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하라’ 고 가르치셨다.

조선시대 정승 중에서 가장 인격이 뛰어난 사람이 황희와 맹사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평소 친하게 벗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황희와 맹사성은 지위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언제나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라의 정사를 볼 때는 엄격하게 하지만, 일단 집에 들어오면 그 인품이 아버지와 같이 여유롭게 하인들을 대하였다.

어느 날 맹사성이 황희 정승을 찾아와 둘은 바둑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이 한창 바둑을 두고 있을 때 두 여인이 서로 싸우며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황희 정승은 장기를 두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물었다. 이들 두 여자 종은 서로가 자기 주장이이 옳다고 떠들어댔다.

한 여종의 말을 들은 황희 정승은 “네 말이 옳구나?”라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여종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래! 네 말도 옳다” 그 말에 함께 장기를 두고 있던 맹사성은 황희 정승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감, 이쪽이 옳으면 다른 쪽이 나빠야지 어찌 모두가 옳을 수가 있습니까? ”그렇군요. 듣고 보니 대감 말씀도 맞는구려.“ 황희는 장기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음! 역시 황희 정승은 보통 인물이 아니로다” 맹사성은 크게 깨닫고 황희정승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그를 크게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남에게서 나를 헐뜯고 욕하는 말을 듣더라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남에게서 칭찬을 들었다고 하여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전해 듣더라도 덩달아 같이 헐뜯고 욕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남의 착한 일을 이야기할 때는 이를 칭찬해주고 함께 기뻐해야 한다. 이런 것이 관용의 마음이다.

이런 시 구절이 있다. “착한 이 보기를 즐겨하고 / 착한 일 듣는 것을 기뻐하고 / 착한 말하기를 좋아하고 / 착한 뜻 행하기를 즐겨하라. 남의 기쁨을 듣거든 / 가시를 몸에 진 듯이 할지며 / 남의 착함을 듣거든 / 향기를 지닌 듯하라”<강절소:송나라 때 사람>

요즘 우리 사회는 화성과 금성만큼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정치하는 여당과 야당이 그렇고 진보와 보수, 노사의 갈등이 그렇고 노인층과 젊은 층들의 세대간의 갈등이 그렇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배격하고 적으로 간주하는 세상은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다와 다른 것을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자기 생각이 절대적이라는 오만함에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슬플 때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위로의 말을 해야 하고, 기쁘고 즐거울 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말을 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은 슬플 때나 즐거울 때, 고통스럽거나 편안할 때나 언제나 위로의 말이 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넉넉한 마음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부모가 우리를 여기까지 기다려주셨듯이 우리도 서로 기다려주면서 관용을 배워야 한다. 관용을 통과해야 비로소 사람이 보이고 사랑이 보인다. 주여! 관용하게 하소서. 받아들이기 힘겨운 상대를 용납하게 하소서. 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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