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에 대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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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에 대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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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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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보면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따라 하는 짧은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온다. 어떻게 하는지 방법도 알려 준다. 무척 쉬워 보인다. 당장 될 것 같아서 해 봤다. 내심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거울에 비친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프로 골퍼의 스윙 폼을 보면 금방 따라할 것 같은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 딴 길을 가고 있다(심지어 지금도 내 폼은 프로같을 거라는 착각을 한다). 대부분의 일 들이 언뜻 보면 쉬워 보인다. 그래서 뭐든지 조금만 연습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착각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유창성 착각(illusion of fluency)’이라 부른다.

테드(TED) 강연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불과 20분 내외의 강연이었는데 핵심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고, 또 이를 전혀 더듬거림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말한다. 20분의 시간은 듣는 사람은 길게 느껴져도 말 하는 사람은 찰나의 순간이다. 인사말 하고 약간의 농담을 하고 서두를 끝냈다고 생각하는데 10분이 훌쩍 지나가 있기 마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내용을 짧게 전달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무대에 서면 누구나 곧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강연자들은 수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연습을 한다고 한다. 강연을 1분 하는데 필요한 연습이 최소 한시간이라고 하니 20분의 강연은 20시간의 리허설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기획 회의, 원고 작성, 원고 수정까지 더해지면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것이다. 한 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자연이 총동원되듯이, 20분의 매끄러운 강연 뒤에는 강연자와 조력자의 많은 시간이 투입되어야 있다.

금방 잘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이유는 인간이 가지는 낙관주의 때문이다(안우경, ‘씽킹 101’). 낙관주의는 과정상의 모든 어려움이 쉽게 극복될 거라 믿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낙관주의적 태도는 건강에도 이롭다. 잘될 거라고 믿어야 현실의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고 비관에 빠지지 않고 스트레스도 덜 받기 때문이다. 몸의 방어기제 중 하나가 낙관주의적 태도인 셈이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사태가 닥쳤을 때 사람들은 곧 나아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낙관주의에서 비롯된 유창함에 대한 착각은 나의 일자리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일이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면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 전문성을 갖는 과정을 너무 안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면 일의 미숙으로 실수를 하거나 혹은 전문가로 가는 과정에 쉬이 주저앉아 버릴 수도 있다.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보기보다 훨씬 어렵다. 무엇보다 유창성 착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유창성 착각을 고치려면 두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첫째, 직접 해봐야 한다. 공예일을 해보고 싶다면 직접 해보고 판단해야 한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한 번 보여 준 집단에 비해 스무 번 보여 준 집단은 당장 문워크 춤을 출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춤을 추게 하니 두 집단의 문워크 실력은 차이가 없었다. 더욱이 머리로 계속 반복하고 생각하는 것의 치명적 단점은 착각의 정도가 깊어진다는 점이다.

노후에 많이 하고 싶어하는 대중 강의도 마찬가지다. 머리로만 생각지 말고 혼자 직접 말을 하고 그 소리를 자신의 귀로 들어 봐야 한다. 자신의 리허설을 영상으로 찍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영화 ‘올드 보이’의 오대수는 감방에서 15년 동안 체력 훈련을 하면서 머리로 싸우는 연습을 한다. 풀려나서는 좁은 복도에서 칼을 든 깡패 10여명을 해치운다. 착각이다.

싸움이야말로 직접 해보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권투와 같은 일대일 싸움도 직접 해봐야 하거늘 1:10의 싸움은 머리의 상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오대수를 보고 착각에 빠진 남자들이 많은데 세상은 결코 호락하지 않다. 자기 몸으로 직접 부딪쳐봐야 한다. 마이크 타이슨의 유연한 더킹(ducking)이나 체중이 잔뜩 실린 훅 펀치는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의 혹독한 훈련의 결과다.

둘째,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판단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 춤을 익히는 데 평균 50시간이 걸렸다면 나도 그 정도는 걸릴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공예를 배워 작품을 내는데 3년이 보통 걸린다면 나도 그 정도를 각오해야 한다.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경제 예측도 사람들의 직관에 맡겨 두면 경기가 금방 회복하거나 혹은 경기가 꺾이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접어드는 것으로 착각한다.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하면 2년 후에 경기 침체가 온다는 데이터가 있으면 그렇게 판단하면 된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나의 착각적 직관을 믿으면 안 된다.

인생 후반에는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패드 화가, 공예가, 원예가를 지망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할 때 경계해야 할 게 유창성 착각이다. 나도 곧 바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착각이다. 전문가로 가는 과정을 과소평가한 탓이다. 이러다 보면 실제로 그 길을 가는 과정이 보기보다 훨씬 지루하고 어렵기에 낙마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전문가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직접 해보고 그리고 앞선 사람들의 데이터를 통해 유창성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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