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사형수
  • 모용복국장
무늬만 사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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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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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형벌
한국, 26년간 사형 집행 안 돼
사형수들 ‘형의 시효 완성’으로
사회 복귀할 가능성 배제 못해
최근 들어 사형선고 사례 줄어
인과응보는 인류불변의 진리다
모용복 편집국장

지난 주말 개인적인 일로 상경 차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붉은 벽돌로 된 건물 내부에 일제강점기 우리 독립투사들이 고초를 겪은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특히 사형장에는 형을 집행할 때 사용된 올가미가 보존돼 있어 그 때의 참상을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었다.

형무소 내 시신수습실 안에는 천장에서 드리워진 올가미 뒤로 강우규 의사의 초상과 함께 절명시(絶命詩)가 자막과 음성으로 상영되고 있어 선생의 비분강개를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단두대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부는 구나/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절명시 전문)

강우규 의사는 1919년 8월 5일 남대문 역 뒤에서 새로 부임하는 일본 총독 사이토를 향해 폭탄을 투척해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정신을 알렸다. 이듬해 11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처럼 일제치하에서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일념으로 투쟁을 벌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형은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 중 가장 중한 극형(極刑)이다. 사형의 유형으로는 총살·참살(斬殺)·교살(絞殺)·전기살·가스살·독약살·석살·주사살 등 다양하다. 사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또 형벌사는 곧 사형의 역사라 할 만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 고조선 사회의 형벌제도를 보여주는 8조법금 제1항에는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고 돼있을 만큼 사형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형벌이라 할 수 있다.

근세에 들어와 인간의 존엄성이 강조되고 사형제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사형을 폐지하는 국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 12월 30일 23명을 한꺼번에 사형 집행한 이후 26년 간 집행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사형폐지국에 해당한다.

최근 들어 흉악범죄가 급증하면서 사형집행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26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탓에 흉악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들이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형법 제78조에 따르면 형을 선고받고도 일정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을 경우 ‘형의 시효 완성’으로 보고 그 집행을 면제하도록 돼 있다. 사형의 경우 30년, 무기징역은 20년이다.


이에 따라 국내 최장기 복역 사형수 원인식이 앞으로 6개월 후면 풀려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는 1992년 10월 4일 강원 원주시에 있는 왕국회관(여호와의 증인 예배당)에 불을 질러 15명이 숨지고 25명을 다치게 했다. 이듬해 11월 23일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이 확정돼 29년 6개월째 옥살이를 하고 있다. 이제 6개월이 뒤면 형의 시효 완성으로 사회에 복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사형에 대한 시효 중단을 들어 ‘사형 시효가 진행되지 않아 법적 지위 변경 없이 계속 구금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사형수가 아니어서 구금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계속 구금하게 되면 우리 형법에는 없는 종신형과 같아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59명의 사형수가 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최장기 복역수 원인식을 시발로 머잖아 30년을 채우는 사형수들이 줄을 잇게 된다. 자칫 법적 미비로 이들이 사회에 복귀라도 하는 날엔 대혼란이 초래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들어서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면수심의 범죄자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사형폐지론자들의 주장처럼 사형이 응보 이외에 효과가 없다면 사실상 사형이 없는 지금 흉악범죄가 줄어들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피해자와 유족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안긴 흉악범들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목숨을 부지해 살아간다면 어찌 공정과 정의를 입에 올릴 수 있나.

나라를 되찾기 위해 투쟁을 벌인 독립투사들은 일제치하 무법(無法) 속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정당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또다른 무법이 되는 셈이다. 어쩌면 저들이 하찮게 여기는 인과응보가 법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효과일지도 모른다. 씨를 뿌린 만큼 거두고,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결과가 따르는 것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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