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指鹿爲馬)
  • 모용복국장
지록위마(指鹿爲馬)
  • 모용복국장
  • 승인 20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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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구시당, 골프대회 놓고
대구시 공무원 환관에 빗대 비판
공무원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뒤늦게 “표현 과했다” 사과 논평
사리에 맞지 않은 과도한 표현은
本末 전도시켜 되레 혼란만 초래

동서고금을 통해 최악의 간신(奸臣)을 꼽는다면 단연 조고(趙高)가 첫손가락에 든다. 그는 중국 진(秦)나라 때 환관으로, 시황제가 여행 중 병사하자 승상 이사(李斯)와 짜고 조서(詔書)를 거짓으로 꾸며 시황제의 장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우둔한 막내아들 호해(胡奚)를 2세 황제로 옹립했다. 그는 온갖 감언이설로 호해를 환락에 빠트려 정신을 못 차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교묘한 술책으로 승상 이사를 처형시킨 뒤 자신이 승상이 되어 모든 권력을 쥐락펴락 했다.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의 권력을 시험하기 위해 하루는 사슴 한 마리를 황제에게 바치며 “말 한 마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호해는 “이것은 분명히 사슴인데 어찌하여 말이라고 한단 말이오(指鹿爲馬(지록위마)?”라며 크게 웃었다. 조고는 정색하며 주위의 관원들에게 이것이 사슴인지 말인지 물었다.

조고의 위세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그에게 아첨하기 위해 말이라고 했다. 그 중 몇몇은 그래도 양심이 있어 사슴이라고 말했다가 나중에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후로 모든 관리들이 조고를 무서워하며 몸을 사렸다. 이 일화에서 저 유명한 고사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나왔다. 이처럼 갖은 악행으로 인해 조고는 역사상 최악의 환관이자 환관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대구시 골프동호회가 주최하는 공무원 골프대회를 놓고 날선 비판을 이어가던 야당이 급기야 환관 조고를 소환해 홍준표 대구시장과 공직자들을 비판하는 바람에 논란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강민구 대구시당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민주당 홈페이지에 홍준표 시장과 환관 5명이 대구시정을 움직이고 있으며, 환관 조고 한 명이 진나라를 태워 먹었는데 대구에는 환관이 5명이나 있다고 비꼬았다.


이에 대해 대구시 고위 공직자 4명은 자신들을 환관이라고 칭한 강 위원장을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지난 2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악의적인 비방과 단정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은 데다 고소인들을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환관 조고’가 법정으로 갈 상황에 직면하자 민주당 대구시당은 뒤늦게 “표현이 과했다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대구시당은 7일 논평을 통해 “‘홍준표 대구’도 시끄럽고 어지럽다”며 “그런 상황에서 야권 정당은 당연히 논평으로 문제를 지적해야 하는 게 민주사회의 일치된 의견이며 정당의 존재 이유이고 의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관이라고 비난한 공무원 5명을 차례로 거명하며, 실명 거론과 과한 표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민주당 대구시당의 논평대로 야당이 대구시정에 대해 정당하게 뭐라 하는 데 시비를 걸 사람은 없다. 또 야당이 정부나 지자체를 감시하고 잘못된 정책에 대해선 과감하게 쓴소리를 하는 건 당연한 권리요 책무다. 하지만 사리에 맞지 않은 과도한 표현은 본말(本末)을 전도시켜 오히려 하지 않은 만 못하게 될 뿐이다. 적절한 곳에 올바르게 쓰인 촌철살인의 말 한마디는 시민 공감대를 얻어 여론형성과 세(勢) 확장에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정치인들이 종종 국정감사나 청문회에서 현학(衒學)의 허세를 위해 어설픈 비유를 들어 상대를 공격했다 오히려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경우가 그러하다.

지금 우리는 말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각종 매스미디어와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근거와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와 주장들이 무차별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처럼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정보와 주장은 국민을 미혹케 하고 잘못된 길로 이끌어 사회를 병들게 한다. 조고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 것과 다름없다. 민주당이 조고의 악행에 버금가는 구체적인 사실을 밝히지 못하면서 공무원들을 ‘환관’이라고 비난하면 그것은 또 하나의 지록위마가 될 뿐이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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