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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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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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꽃향기가 아찔하다. 봄 기온이 완연하다. 베란다에서 겨우내 다닥다닥 팔짱 끼고 있던 꽃나무들이 마당에 나와 햇살과 맞댐을 하는 계절이다. 자장가 같은 봄바람이 저를 흔들 때마다 향을 뽐내는 재스민. 보랏빛 무희들이 연초록 이파리 위에 살포시 포개 앉았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시시때때로 꽃이 오는 재스민은 내가 식집사가 된 이유이다.

‘식집사’는 식물과 집사를 합친 신조어다. 식물을 가족같이 보살피며 애정을 쏟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원래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말하는 집사에서 유래된 표현인데, 반려 식물을 기르는 사람을 일컬어 새로 생긴 말이다. ‘식집사’라 해서 내가 대단한 식물 정원을 가진 건 아니다. 몇 포트의 꽃과 나무를 정성껏 기르고 있을 뿐이다. 아침나절 생글거리는 꽃의 얼굴을 마주하면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식물을 보살피는 집사로서의 특권일 것이다.

오늘은 베란다와 거실, 화장실까지 점령하고 있던 식물 군단들을 마당으로 들어내 제자리를 정해주는 날이다. 양지식물과 음지식물에 따라 장소를 배정하고 화분의 키와 크기에 따라 각자의 자리를 배치한다. 대부분의 목질화된 꽃나무는 햇살을 좋아하고, 녹지의 작은 식물들은 반음지에서 잘 자란다. 이때만큼은 집사라기보다 내가 대장이 되는 유일한 때이다. 집사의 손이 덜 필요한 큰 식물은 마당의 울타리로 보내지고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작은 아이들은 앞으로 배치해 눈에서 멀어지지 않게 한다.

나무가 아닌 작은 풀꽃들은 여름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중에서도 제라늄은 고온과 습도에 민감하여 관심을 가지고 잘 관리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며칠 집을 비운 사이에 뿌리가 물러져 절반이나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나머지도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꽃을 떠나보내고 속상할 틈도 없이 그나마 남은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전전긍긍했다. 먼저 시든 잎을 잘라내고 뿌리의 흙을 털어내 소독제를 푼 물에 살살 흔들어 씻었다. 그리고 신문지에 올려 하루 꼬박 말린 다음, 다음날 새 흙으로 분갈이하여 베란다 병실로 옮겼다. 영양제를 꼽고 선풍기의 바람을 미풍으로 맞으며 그해 여름을 났다. 다행히 차차 기력을 회복하였고 지금은 환하게 웃으며 꽃을 피우고 있다.

일 년을 기다려 단 한 번 꽃이 오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한철 내내 피고 지는 것도 있다. 한련화가 그중 하나다. 햇살과 물을 좋아하며 식용이 가능한 꽃이기도 하다. 연잎을 닮은 작은 이파리는 쌉싸름한 맛이 난다. 꽃잎은 샐러드나 비빔국수, 비빔밥 위에 색색으로 서너 송이 올리면 눈맛이 그저 그만이다. 화분에서는 월동이 되지 않아 해마다 봄이면 몇 포트씩 새로 들여놓는다. 한련화는 고운 낯빛으로 봄을 알려주는 전령인 셈이다.

식물들이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기 위해서는 충분한 일조량과 통풍, 영양과 함께 적당한 수분이 필요하다. 그중에서 제때 물주기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특히 무더운 여름에는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하루를 견딜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물을 주어야 한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에 물을 주면 더운 열기로 나뭇잎들이 화상을 입게 되고 그로 인해 몸살을 앓게 된다.

얼마 전 외도를 다녀왔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테마파크였다. 개인 소유라고 하기에는 섬 전체가 어마어마하게 큰 정원이었다. 정돈되고 다듬어진 정원의 식물들은 사람들에게 쉼을 주는 게 아니라 돈벌이 수단이 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나무들은 인공적으로 머리며 팔, 다리가 잘리고 열 맞추고 각 맞춰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 있었다. 그들도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사지를 뻗고, 때로는 고요히 상념에 잠기고 싶을 텐데 말이다. 봄바람이 살랑대는 봄날에도 꽃의 얼굴들이 애처로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 걸까.

한동안 ‘헬리콥터 맘’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쟁점이 된 적이 있다. 자녀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온갖 걸 참견하며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들을 빗댄 말이다. 부모의 통제가 강할수록 자녀들의 육체 활동과 성장 발육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식물을 보살피는 일도 자식을 키우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햇빛이 강하면 그늘을 만들어주고 바람이 차면 실내로 들여놓아야 한다. 때맞추어 물도 주어야 하고 발육에 필요한 영양제도 먹여야 한다. 잠시 마음을 놓아버리면 시드럭부드럭하다 결국에는 고사하고 만다. 그러나 성장한 자식을 부모의 욕심에 맞춰 조종하고 휘둘러서는 안 되는 것처럼 식물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성장 억제제를 주입하고 철사로 허리를 꺾고 팔다리를 동여매 사람들의 눈요깃거리로 만든 건 식물 집사로서의 그릇된 참견이며 욕심일 것이다.

식물을 보살피다 보니 지금에야 나를 키워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성싶다. 더울세라 추울세라 보듬고, 아플 때면 밤새워 곁을 지키던 당신들. 한 송이 꽃을 피우려 무던히도 가슴앓이했으리라. 엄마가 된 지금 나는 내 아이들을 어떤 꽃으로 피우고 있는 것일까. 온실 속의 화초는 곱고 화려하지만, 세상 밖으로 내어놓으면 금방 시들고 만다. 온갖 풀꽃과 어우러져 혹한을 견딘 초목들처럼 저마다의 꿈을 활짝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다 저문 저녁, 창문 너머에 흰 으아리꽃이 울타리를 층층이 감고 올라 꽃 등불을 환하게 달았다. 천변만화하는 바람이 옆구리를 뒤적거려도 잠잠히 수묵화 같은 생각에 잠긴 으아리. 문장 속 행간 같은 봄밤을 저리 지새우고, 아침이면 배시시 웃는 얼굴로 또 무슨 말 하고 싶을까.

김지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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