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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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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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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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아름다운 말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엄마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찡해온다. 어릴 적‘엄마’하고 불러보면 요술을 부리는 주문과 같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그 말 한마디면 배고픔도, 아픔도, 외로움도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엄마라는 주문은 어린아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이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습관처럼 튀어나올 때가 많다. 세상을 살다 갑작스러운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주문이‘엄마야’이다.

어버이날의 유래는 191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에서 한 소녀가 어머니 추도식을 맞이하여 교인들에게 흰 카네이션을 나누어 준대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956년부터 매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해 왔는데,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변경하여 기념해오고 있다. 올해는 50회째 맞이하는 어버이날이 있는 해이다.

오늘도 가만히 어머니 생각에 젖어본다. 내가 서른아홉 살 3월 중순 친정엄마를 하늘로 보냈다. 그러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맑은 목소리와 피아노 음들이 화음을 이루어 정겹고 경쾌한 피아노 교실 풍경이 나의 직장이다. 1학년 여자아이의 레슨 중이었다. 마침 옆 연습실의 4학년 아이가 연주하고 있는 <어머님 은혜>라는 곡이 귀에 가득 들려왔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수업하다가 여덟 살 아이 앞에서 울고 앉아있으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아이는“선생님 왜 울어요?”하고 물었다. 잠시 뒤 기분을 추스르고,“응 엄마 생각이 나서”하고 어색하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선생님 울지 마세요. 우리 엄마 빌려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워서 말없이 아이를 꼭 껴안았다. 아이는“그러니까 이제 울지 않기예요”라고 하면서 나를 올려다보며 방긋 웃어주었다. “엄마를 선생님께 빌려주면 너는 엄마가 없어서 어떻게 해?”라고 말하자 “저는 아빠가 있어서 괜찮아요, 선생님은 아빠도 없잖아요.”라고 말하며 다시는 울지 말라고 나의 다짐을 받았다.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얼마나 고맙고, 예쁜 생각인가?

무엇을 빌리는 행위를 렌탈이라고 하는데 현대 사회는 렌탈할 수 있는 물건이 너무 많다. 자동차나 가전제품 넓은 의미로 전세나 월세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사람을 빌려 쓸 수는 없는 일, 더구나 아이들에게 엄마는 세상 모든 것일 텐데 그 소중한 존재를 나에게 빌려주겠다고 하였다. 얼마나 맑고 순수한 생각인가.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온 날이었다.

오월은 유별스레 행사가 많은 달이다. 어버이날을 비롯해서 꼭 기념해야 할 만한 굵직굵직한 날들이 들어있다. 그중에도 내게는 어버이날이 가장 비중 있게 다가온다. 그날 하루만큼은 이미 떠나고 안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 철없던 행동들을 반성하기도 하고, 산소를 찾아가 카네이션을 심고 용서를 빌기도 한다.

지난날을 가만히 돌이켜 어머니를 생각해 보면 늘 가슴 저 밑바닥이 저릿하게 아프다. 막내였던 내가 열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그때부터 어머니는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철이 없고 어린 나는 엄마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나의 어떤 모습으로도 용서가 되어 안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의 엄마일까? 직업을 가지고 있어 늘 바쁜 엄마. 아이들의 주문에 다 응해 주지 못한 엄마.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부족함이 많은 엄마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푸근함보다는 당당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가는 엄마로 살고 싶은 마음도 강했던 것 같다. 또 그것이 부모로서의 본보기라 생각도 했다. 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그들의 가슴에 남을 수 있을까? 물음표가 그려진다. 엄마로서 부족했던 부분들을 지금부터라도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세상의 많은 말 중 나에게는 가장 가슴 찡한 말이 엄마라는 말이다. 유난히 가슴 시리게 느껴지는 오월이다. 엄마도 빌릴 수 있다면, 지금 하늘에 계시는 당신을 단 하루만이라도 빌리고 싶다. 어떠한 값을 치르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내가 예전에 하지 못한 말들도 이제는 엄마에게 해주고 싶다. 나는 엄마를 많이 사랑했고 지금도 나에게는 엄마가 많이 필요하고 사랑한다고.

그때 따뜻했던 그 아이의 말은 내가 엄마 곁으로 가는 날까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도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워 가슴으로 울 때가 많다. 지금 마음이라면 쑥스러워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가슴 벅차도록 껴안고 싶다. 후회가 켜켜이 쌓이는 오월이다. 엄마, 당신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그리움의 깊이를 생존해 계실 때는 잘 몰랐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부재 시에 그리움은 더 깊어지고,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후회는 절대 앞서지 않는다. 그리움도 앞서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 엄마는 언제나 가슴 저 밑바닥이 아픈 그리움의 대명사이다.

오은주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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