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음악제의 공정과 정의를 생각한다
  • 이진수기자
포항음악제의 공정과 정의를 생각한다
  • 이진수기자
  • 승인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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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음악제 감독 선정 석연찮아
문화재단, 감독선정위원회 선정
선정위, 후보 추천·평가로 선정
감독부친 재단에 6600만원 협찬
클래식 음악 활성화 취지 좋으나
기회의 평등·과정의 공정성 중요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시대정신은 일제 강점기에서의 민족해방, 해방 이후에는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산업화, 그리고 자유 평등 인권을 누리려는 민주화입니다.

사회학자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민족해방, 산업화, 민주화를 한국 100년의 시대정신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다 성취했습니다.

시대정신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입니다.

2000년대부터는 ‘공정’과 ‘정의’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특히 산업화, 민주화 시대 이후인 젊은층에게 공정과 정의는 절대적 가치입니다.

최순실씨 딸,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50억 원 퇴직금,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으나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하루만에 사퇴한 검사 출신의 정순신 변호사 등에 대한 국민적 공분의 핵심은 ‘부모 찬스’입니다. 즉 공정과 정의가 결여됐기 때문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시민들에게 선사하는 포항음악제에 대해 공정과 정의의 관점에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음악제는 2021년 첫회를 시작으로 지난해도 개최됐으나, 음악제 예술감독 선정이 석연치 않다는 것입니다.

포항시와 포항문화재단(재단)은 2020년 음악제를 기획·추진하면서 우선 감독선정위원회(3명)를 선정하고, 이후 선정위가 감독 후보(총 5명)를 추천합니다.

선정위는 후보들에 대한 심의·평가를 거쳐 2021년 1월 포항 출신이며 30대 초반의 첼리스트 박모씨를 예술감독으로 선정했습니다. 예술감독이라는 스펙은 상당한 명예와 권위로 예술활동에 있어 큰 자산입니다.

문제는 재단이 감독을 공개모집이 아닌 일종의 추천으로 진행했으며, 선정위 구성도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일반적으로 추천은 공모보다 특정인의 영향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습니다.

박 감독의 부친인 박모씨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박씨는 최근까지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협력업체(정비 부문) 대표였습니다.

박 대표는 딸이 음악제 감독으로 선정되기 전인 2018년 10월 15일 재단에 3000만 원을 기부했으며, 공모를 통해 그 해 12월 28일 재단 이사에 위촉돼 2022년 12월까지 4년 간 재임했습니다.

박 대표는 음악제 첫회인 2021년 600만 원, 이듬해 3000만 원 협찬으로 재단에 총 6600만 원의 상당한 금액을 내놓았습니다.

여기에 친분 있는 지역 기업인들에게 협찬을 당부해 성과를 얻는 등 음악회 후원자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1회 4억 8000만 원, 2회 7억 1000만 원(시비·기업 협찬 등)의 음악제 예산에 박 대표의 후원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습니다.

시와 재단은 박 대표를 고맙고 감사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결과적으로 시는 예산 걱정을 덜었고, 박 대표는 딸이 감독으로 선정됐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50만 도시 포항이 특정 기업인의 후원에 기댄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자존감 없는 행정이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포항음악제가 아닌 특정인의 이름을 딴 음악제라 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인의 문화예술 후원을 ‘메세나’라고 합니다.

메세나의 대표적 예로는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문예부흥) 시대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숱한 문화예술인을 지원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꼽습니다.

르네상스는 인류 역사를 화려하게 빛냈으며, 메디치 가문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세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문화예술을 위한 조건 없는 순수한 후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박 대표가 딸이 음악인이 아니 였어도 과연 물심양면의 메세나 활동을 했느냐는 것이며, 또한 감독 선정에 있어 공모가 아닌 후보 추천에 따른 평가 방식이 공정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의문점이 다가옵니다.

포항시의회는 3월 감독 선정에 문제가 있다며 올해 음악제 예산 4억 원(도비 1억 2000만 원·시비 2억 8000만 원)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와 재단은 당초 박 감독과 3년 계약한 만큼, 삭감된 예산을 7월 추경예산에서 살려 올해도 박 감독 체제의 음악제를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포항음악제는 가을 개최로 통영국제음악제(봄), 대관령국제음악제(여름)에 이어 국내 클래식 페스티벌의 3대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출범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활성화라는 취지는 좋으나, 감독 선정 등 문화예술에 있어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는 걸음마 단계인 음악제에 자칫 그릇된 선례를 남겨서는 안되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포항음악제 감독 선정에 포항시 및 포항시의회, 재단, 지역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진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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