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근대역사관, 9일부터
광복회 재조명 특별전시회
항일 무장투쟁 비밀결사 조직
활동 상황~광복 시점 4부 구성
광복회 재조명 특별전시회
항일 무장투쟁 비밀결사 조직
활동 상황~광복 시점 4부 구성

1910년대 대구를 중심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광복회’를 재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4일 대구근대역사관에 따르면 오는 9일부터 11월 5일까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대구(大邱)에서 만나자 -1910년대 광복(光復)을 꿈꾼 청년(靑年)들’ 특별기획전을 연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대구지역 독립운동사 돋보기’ 성격의 전시회다. ‘열린 도시’ 대구가 만들어낸 독립운동인 ‘광복회’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대구가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 대구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광복회는 1915년 8월 25일 국권 회복과 독립을 꿈꾸던 청년들이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하면서 탄생했다. 대한광복회로 불리기도 한 이 단체는 1910년대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비밀결사 조직으로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춰 가장 격렬히 행동했던 단체였다.
기획전은 달성공원에서 광복회가 결성된 시점부터 활동 상황, 광복 시점까지 총 4부로 구성됐다.
2부는 ‘청년들, 광복을 꿈꾸다’를 주제로 광복을 위해 광복회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 활동이 당시에 어떻게 비치고 있었는지 살펴본다. 특히 당시 대구경찰서 앞에 있던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가 중요한 연락 거점이었던 점, 대구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군자금 모집 활동인 ‘대구권총사건’(1916년 9월) 등을 사진과 신문 기사 중심으로 소개한다.
3부 주제는 ‘청년들, 꿈을 이루지 못하다’이다. 총사령 박상진을 비롯해 전국의 지부장 등 40여 명이 일제에 붙잡히면서 광복회가 와해돼 가는 과정을 담았다. 1910년대 가장 많은 순국자가 나온, 매우 치열하게 활동한 독립운동단체였음을 재판 관련 신문 기사, 판결문, 편지 등을 통해 선보인다.
4부는 광복회의 치열했던 독립투쟁 모습 이후 계승·발전되는 과정을 ‘청년들의 꿈은 이어지다’라는 주제로 풀어냈다. 국권 회복과 독립을 꿈꾸던 청년들의 독립투쟁은 독립의 염원을 1919년 3·1운동으로 결집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1920년대 이후 더 격렬해진 의열 활동으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1945년 ‘광복’을 맞았다.
신형석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장은 “대구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시작점이었다”며 “이번 전시회가 ‘열린 도시’ 대구를 ‘광복회’를 통해 새롭게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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