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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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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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의 탓일까

기원전 1세기경,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했다. 우리에게 주몽은 영웅이지만, 정복당한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날벼락이다. 이 사태가 누구의 탓일까?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이 해모수란 무책임한(?) 남자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금와왕이 유화 부인에게 반하지 않거나 아들 대소가 주몽을 좀 잘 대해줬더라면, 주몽이 부여를 탈출해 환인으로 왔을 때 연타발이 이미 아들이 있던 딸 소서노를 주몽과 결혼시키지 않았더라면, 고구려의 건국은 없었을 수도 있다.

이 일련의 사건은 고구려 건국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몽이 죽고 부여에서 찾아온 아들 유리가 왕이 되자 소서노는 아들 비류, 온조와 남쪽으로 떠난다. 유리가 정말 주몽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 새로운 이주 집단이나 다른 부족의 대표가 주몽을 제거하고 왕이 되고, 이 바람에 소서노 세력이 이주했을 수도 있고, 잠깐 결혼동맹을 맺었던 주몽과 소서노의 부족이 대립하다가 소서노 세력이 밀려난 것일 수도 있다.

온조는 한성 유역을 점령하고, 주변의 도시국가들을 정복해서 백제를 세웠다. 도시국가 중에는 순순히 복속한 지역도 있겠지만, 저항하다가 험한 꼴을 겪은 도시나 마을도 있었을 것이다. 온조군에 패해 도주하던 어느 도시의 귀족은 누군가를 저주했을지도 모른다. 이 사태의 원흉이 누구일까? 사태의 정점에는 해모수가 있다. 시대를 더 뒤로 보내면 그가 유화를 농락하고 버린 탓에 부여, 환인, 송양국이 멸망하고, 그 영향이 한반도까지 미쳐서 마한이 사라지게 했다. 그 귀족은 말 위에서 깨닫는다. “아! 이 모두가 해모수의 탓이구나.”

“해모수 탓”이라는 사실 설명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해서 만주에서 한반도 사회를 뒤흔든 격동, 도시국가의 통합과 정복전쟁이란 역사적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복잡하고 격동적이었던 도시국가 통합의 시대를 형성했던 조각의 하나이다. 고로 해모수 탓은 사실을 구성하는 고리의 하나인 것은 맞지만, 올바른 역사해석도 아니고, 그 시대 사람과 현재의 우리에게 역사적 교훈이 될 수도 없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충돌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과의 전쟁은 끝이 없고 해결될 기미도 방법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영국 탓이야”란 말이다.

인도-파키스탄 분쟁, 아프리카의 분쟁을 위시해서 해결 곤란한 세계의 모든 분쟁 뒤에는 영국이 있다는 말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한때 세계의 절반을 지배했던 대영제국의 잘못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사태의 원인일까? 아니면 원인을 구성하는 일부일까?

◇ 역사의 내적 원인과 외적 원인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라비아의 아랍 부족들이 오스만 제국에 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면 오스만 제국이 타도된 땅에 아랍 민족국가를 세워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이 맥마흔 선언이다. 조금 후에 영국은 인종 혐오와 박해에 시달리던 유대인들이 2000년 전에 떠난 고향으로 돌아가 나라를 세우겠다는 시오니스트 운동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것이 벨푸어 선언이다. 이 이중 약속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역시 중동 정세를 구상하는 사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영국과 프랑스가 팔레스타인의 통치자가 되고, 오늘날에 보이는 국경이 만들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오스만제국이 1차 대전에 주축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국이 된 것과 아라비아반도에 매장된 석유 때문이었다.

석유는 전후 세계, 증기기관차에서 우주 개척까지 인류가 탄생해서 이때까지 수백만 년 동안 이룬 발전의 속도보다 더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현대 산업사회의 성장과 세계 경제를 좌우할 어마어마한 자원이었다. 이 엄청난 자원을 심지어 제국주의 열강까지도 포함해서 그 누구도 독점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영국, 프랑스는 다른 열강의 지원을 업고 아라비아반도에서 이란까지의 지도를 게리멘더링하고, 그들이 선택한 지도자들을 지배자로 앉혔다.

그러면 석유, 혹은 열강의 제국주의적 정책, 그들의 이해관계가 이 사태의 궁극적 원인일까?

영국의 이중 약속을 우리가 도덕적으로 규탄하고 국제정치학이란 관점에서 반성할 수는 있지만, 맥마흔 선언과 벨푸어 선언의 효과는 과장되었다. 그것이 지난 80년간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든 궁극적인 원인도 아니고, 모든 원인은 더더욱 아니다.

맥마흔 선언은 이집트 주재 고등 판무관 헨리 맥마흔과 오스만제국이 퇴락한 틈을 노려 아라비아반도에서 칼리프를 꿈꾸던 메카의 태수 후세인 빈 알리 간에 맺은 일종의 비밀 협약이다.

영국의 지원 약속에 고무된 후세인 빈 알리는 반란을 일으킨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바로 이 반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로렌스는 영국 측에서 아랍 반군에게 파견한 정보장교이며 연락장교였다. 그의 상대역인 아랍 반군의 지도자 파이잘은 후세인 빈 알리의 셋째 아들이었다. 로렌스는 후세인의 아들 중에서 파이잘이 가장 뛰어난 리더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파이잘과 함께하면서 주요 전투에 참전했다.

로렌스의 수기에도 나오지만 당시 아라비아반도의 부족들이 다 반란에 가담한 건 아니었다. 후세인이나 파이잘을 전후 통일 제국의 지도자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문명이다. 7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서는 도시국가가 건설되었다. 서쪽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은 또 다른 문명국가가 세워지고, 시리아, 레바논은 지중해 무역으로 번창했다.

그런데 이 찬란한 문명과 별개로 아라비아반도는 메카 같은 소수의 도시를 제외하고는 20세기까지도 야성적인 부족체제로 유지되었다. 이슬람제국이나 오스만제국의 휘하에서도 이 지역의 야성은 그대로였다. 로렌스의 부대가 부족들을 대대적으로 규합해서 아카바 항구를 점령할 때도,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지역 토호, 부족들도 많았다.

후세인은 팔레스타인까지 포함하는 광대한 제국의 칼리프를 꿈꿨다. 영국의 약속 위반은 이스라엘 건국만이 아니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이 떠난 자리를 온전히 후세인에게 물려줄 마음이 없었다. 파이잘은 시리아 왕이 되고 싶어 했고, 실제로 자기 군대로 수도인 다마스커스를 점령했다. 하지만 영국은 그를 시리아에서 내쫒았다. 뭐 대신 이라크 왕으로 세워주었으니 아주 저버린 건 아니었다. 후세인의 둘째 아들 알리는 요르단 국왕이 되었다. 후세인은 메카를 중심으로 헤자즈 왕국의 왕이 되었는데, 이곳이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이다.

후세인과 아들들은 다 서운했지만, 전후에 영국이 약속을 지켰더라도 그 제국이 얼마나 유지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다른 아랍 부족들로부터 “영국이 세운 괴뢰”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후세인은 바로 자신의 왕국을 아랍 반란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토호에게 빼앗긴다. 이 집안이 현재의 사우디 왕가이다.

영국의 약속 위반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협약의 아랍 민족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현재뿐 아니라 고대에서도 국가와 민족의 역사는 자국민만의 사정으로 혹은 외국의 영향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역사는 크게 내적 원인과 외적 원인이 충돌하면서 발전해 나간다.

여기에 수니파, 시아파로 나뉘는 이슬람 세력의 분열, 다양하고 복잡한 부족과 종족 갈등, 미국과 소련, 20세기 중동이 역사는 20세기 모든 갈등의 특별하고도 복잡하고 강력한 집합이다.(왜냐하면 사실 이런 외적 요소는 현재 세계 모든 지역의 역사에 공통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국제협약, 비밀협정, 전시 약속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인류 역사에서 국제협약이 항구적이고 순수하게 지켜지는 경우는 없다. 이것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지켜진 정글의 법칙이다. 당장 현재 세계만 봐도 지구를 덮은 수많은 조약, 협정이 수시로 무시되고 깨어지고 있다.

조약의 파기, 탈퇴, 무시가 올바른 행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작금의 현실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국제협정의 진실이고 실체이며, 역사의 교훈은 협약의 파기에 대해 정의로운 질타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협약의 실체를 이해하고, 지금 벌어지는 사건, 앞으로 닥칠 사건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올바르게 이용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국제정치에 도덕과 정의가 없다는 말이 도덕과 양심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신념과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외면해서도 안 된다. 현명하고 냉정한 눈으로 실제적인 진보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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