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통곡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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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통곡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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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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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잠수함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토픽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일단 심호흡부터 해야 한다. 한국인치고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거북선, 판옥선, 조선 수군의 전술, 이순신의 성격, 선조와 이순신의 갈등, 심지어 이순신의 상처부위까지 이순신과 관련된 토픽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급흥분하고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이 현상의 원인을 따져보기 전에 그런 토픽부터 살펴보겠다.

40년 전 대학생 시절에 서점인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거북선에 관해 쓴 아마추어 연구가의 책을 보았다. 서문에 이런 사연이 적혀 있었다. 어떤 해군 대위가 거북선이 잠수함이라고 주장했다. 그 말에 반박했더니 흥분한 대위가 이 분의 따귀를 때렸다. 그 책의 제목과 저자는 잊어 버렸는데,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거북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하였다.

거북선 철갑선설도 오랜 논쟁거리이다. 학계에서는 이제 거의 이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실록에도 철갑이야기는 없고, 목판으로 덮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거북선이 철갑선이 아니었다고 하면 여전히 불편한 분들이 많다. 이런 타협적인 의견을 제시한 분도 있었다. “목판에 얇은 철판을 붙였을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 임진왜란 때 나무로 만든 방패, 방탄판의 표면에 얇은 철판을 붙인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런 방패를 철방패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는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사실보다 ‘세계 최초의 철갑선’, 즉 ‘세계 최초’라는 말에 현혹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세계 최초가 아니라고 하면 서운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최초면 또 뭐가 달라질까?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는 전략가, 장군, 리더로서 존경하는 것이지, 엔지니어로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거북선을 둘러싼 논쟁은 철갑에서 내부구조로 옮겨 갔다. 거북선 내부가 2층 구조였느냐 3층구조였느냐는 논쟁이다. 현재 거북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는 외형을 보여주는 자료만 남아 있다. 거북선의 내부구조를 설명하는 자료는 전혀 없다. 2층설, 3층설은 거북선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추정이 달라지면서 발생했다.

3층설은 거북선이 2층 구조라면 노꾼과 포수, 사수들이 같은 층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는 추정에서 출발했다. 일단 1층은 수면에 잠기고, 조선의 노의 특성상 1층에서는 노를 저을 수가 없다. 따라서 1층은 창고, 휴게실로 사용하고, 노꾼은 2층, 3층에는 전투병이 위치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3층설에 대한 반론은 3층으로 하면 선고가 너무 높아져서 전복의 위험이 커진다. 높이를 낮추면 2층, 3층이 너무 낮아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노꾼과 전투병이 혼잡하게 얽히는 것보다 더 불편하다. 어느 설도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합리적 추론의 영역에 있을 뿐이다.

◇당파와 충격전술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70년대에는 영화 단체관람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단체관람의 단골메뉴가 이순신 영화였다. 영화관 가득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는 장면이 연막 속에서 거북선이 등장해 왜군의 전함을 들이 받아서 두쪽을 내거나 침몰시키는 순간이었다.

조선 수군은 거북선은 정말 충돌로 적함을 파괴했을까? 전근대 해전술은 대개 3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원거리 무기, 활, 투석기, 총, 화포 등으로 적선, 특히 적선의 승무원을 제압하고 파괴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충격전술이다. 말 그대로 들이받아서 적선을 파괴하거나 전복시키는 방법이다.

세 번째가 등선백병전술(Boarding)이다. 해적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대로 전투병들이 적선에 돌입해서 백병전으로 적병을 제압하는 방법이다.

충격전술로 명성을 날린 전함이 고대 지중해를 지배했던 갤리선이다. 그 중에서도 크고 훌륭했던 삼단노선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충격전술로 명성을 날렸다.

삼단노선은 선두에 예리하고 튼튼한 충각을 설치하고, 상대의 배를 받아 침몰시켰다. 승리의 비결은 적선의 측면을 들이받는 것이었다. 근대의 공중전이 상대 전투기의 꼬리를 무는 것이 관건이었다면 갤리선들은 측면을 포착해야 했다. 제대로 들이받으면 한방에 적선이 전복하거나 둘로 갈라졌다. 이렇게 일발필살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경우는 적선에 치명적인 구멍을 낸 것에 만족하고 노를 뒤로 저어 후진해서 빠져 나왔다.

충격전술을 감행하려면 두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가 충각이다. 충각이라고 하면 선체 앞에 돌출한 뿔과 같은 장비를 연상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목선에 이런 거대한 충각을 매달거나 선수에 고정시키면 막상 적함과 충돌할 때, 부러지거나 충각이 접합 부분에 과부하가 걸려, 아군 함선의 선수를 파괴해 버릴 것이다. 아주 정확하게 수직으로 들이 받는다면 송곳처럼 박힐 지도 모르겠지만 배는 물살에 항상 요동하는 상태이므로 정말 완벽한 수직으로 박았다고 하더라도 조금 후에는 아군 배부터 부숴버릴 것이다.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려면 충각을 선수에 매다는 것이 아니라 선체와 일체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일체화 시키는 구조가 용골이다. 용골은 지붕의 대들보 혹은 인체의 등뼈와 같이 선체 하부 중간에 일자로 놓이는 골격이다. 이 용골이 선수 밖으로 돌출해서 충각이 된다.

그러므로 충격전술을 시행하려면 용골이 필수이다. 우리나라의 전통배에는 용골을 사용하지 않는다. 판옥선에도 용골이 없다. 거북선은 판옥선에 상판 장갑을 덧씌운 배이므로 당연히 용골이 없다.

왜선은 가볍고 약한 삼나무로 만들고, 조선 전함은 튼튼한 소나무로 만든다. 또 왜선은 선체 바닥 중간을 이어붙이는 첨저형인데 비해 조선 전함은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어서 구조적으로 튼튼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충격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물론 조선군의 판옥선은 일본군 주력함인 세키부네보다 훨씬 크다. 실전에서 세키부네와 충돌하거나 밀어버리는 경우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조선 전함은 튼튼해서 왜선과 충돌하면 왜선이 부서진다는 기록이 실록에 한번 나온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유재란 직전 선조가 왜의 재침과 수군력을 걱정하자 선조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다. 이 말을 한 사람도 해전을 목격한 적이 없다.

우리가 전술이라고 할 때는 표준화되고 의도적인 전투방식을 말하는데, 조선 수군은 기본적으로 활과 신기전, 화포로 적을 제압하고, 적함의 병사가 거의 죽거나 도주한 다음에 적선에 근접하거나 진입해서 소탕하거나 불태우거나 파괴하는 방식이었다.

충각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 필요한 조건이 백병 능력이다. 충각전술은 적선을 일거에 전복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엉킨다. 나무는 물에 뜨므로 목선은 파괴되어도 쉽게 침몰하지 않는다. 결국 충돌전술은 백병전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므로 충돌전술과 등선백병전술은 하나의 세트이다. 따라서 충돌전술은 백병전에서 우세한 군대가 즐겨 사용한다. 그리스군이나 로마군이나 최강의 보병인 중장보병을 배에 태우고 싸웠다.

조선군과 왜군의 전투에서 왜군의 장기가 백병전이었다. 조선군의 장기는 활과 화포이다. 조선군은 왜군과 거리를 두고 싸웠다. 왜군이 인파이터라면 조선군은 아웃복싱이었다. 그런데 조선군이 충돌전술을 주력전술로 쓴다는 건 난센스이다.

충격전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전투 보고서에 등장하는 당파(撞破)라는 용어가 충돌전술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당’은 친다는 뜻이고 ‘파’는 파괴한다는 말이니 충돌전술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치는 주체가 꼭 선박이 아니라 장군전이나 도끼나일 수도 있다. 실록에 있는 용례를 보면 당파는 그냥 파괴해서 못쓰게 만든다는 의미였다.

기록 중에는 적선에 충돌했다는 표현도 있는데. 우리 말에서 충돌했다. 부딪혔다는 말이 꼭 물리적 충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투를 벌였다. 싸운다고 할 때도 충돌한다. 부딪힌다는 말을 쓴다. 거의가 이런 뜻이다.

충돌전술이 아니었다고 해서 우리가 실망할 이유는 없다. 조선 수군의 전술은 훨씬 고난도의 팀플레이였다. 적을 십자 화망에 가두고, 화포, 장군전, 신기전, 활 등 모든 발사무기를 동원해 적을 제압한다. 이때의 화포는 영화처럼 펑펑 터지는 화포도 아니다. 복잡하고 위험하고 어려운 작업을 통해 근접해서 발사해야 했고, 다시 발사하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 공백을 다른 배가 로테이션 하거나 신기전, 화살, 같은 다른 무기를 사용해서 적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해야 했다.

유명한 학익진도 십자화망과 발사무기에 기반한 팀플레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포진이었다.

이외에도 이순신의 노량해전에서의 고의 사망설, 이순신과 원균, 선조와의 갈등, 심지어 이순신의 생존설까지 정말 많은 논쟁들이 있다. 이중에는 온전한 해답을 내릴 수 없는 주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진실이며, 진실은 어떤 내용이라도 이순신의 업적과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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