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적응 여부는 단순화해서 생각하면 외부 환경 변화의 정도와 우리의 적응 능력이 결정한다. 즉 환경 변화가 얼마나 급격하게 일어나고, 그 변화에 얼마나 오래 노출되며, 이를 견딜만한 능력이 얼마나 뒷받침되는지에 따라 적응의 성패가 갈린다. 예를 들어, 평균 수준의 장마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도 큰 문제가 없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집중호우는 산사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오래 지속되는 경우 하천범람, 싱크홀로 인명피해가 크게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인프라 안전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미리 취한다면 심한 집중호우를 비교적 잘 견딜 수 있다. 이렇게 적응 능력이 향상되면 자연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해도 그로 인한 사회적 재난의 피해가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예측이 어려운 재난이 발생하거나 기후적응 정책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경우 여전히 적응에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여기서 기술은 여러 방면에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우선 기술은 예측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미 센서기술과 데이터과학을 이용한 조기감지·경보시스템이 개발되어 산불을 조기에 탐지하여 피해를 줄이는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은 그동안 예측이 어려워 무방비상태였던 영역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환경변화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찾는 데에도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농업 기술은 생물학과 데이터과학을 융합하여 변화된 기온에서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을 선별하고, 적은 양의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물순환기술, 새로운 기후환경에 적합한 건축·인프라 기술, 신종 감염병 진단·치료 기술 등 다양한 적응 영역에서 적용 가능한 기술이 존재한다.
이상에 나열한 기술은 만능이 아니지만 적응과 회복의 ‘능력’을 높이고 ‘위험도’를 낮춤으로써 건강과 안전, 생업을 보호하는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 이들 기술은 기존의 원천기술을 ‘사람’이 기후위기에 잘 적응하기 위해 활용하는 응용기술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후 적응력을 높이기 위하여 무슨 기술이 개발되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는 먼저 ‘누가 기후위기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기술 수요가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기후위기가 생태계, 보건, 인프라 등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기반연구가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기후위기 영향에 대한 미래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질 수 있으며,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
한편, 많은 기후 적응 기술은 현재 우리가 처한 환경에 적응하는 목적보다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극한의 기후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미래기술에 가깝다. 현재의 기후 적응은 대민 서비스와 인프라 보수와 같이 안전 매뉴얼을 따르는 것으로 최악을 면할 수 있겠으나, 2030년 이후 빈번해질 극한의 기후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열대야 속에서 적응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아직까지 에어컨이나 선풍기 이상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취약계층에도 폭염 주의보·경보를 알리고 쉼터를 제공하거나 냉방 물품을 지원하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런 방법으로 2040년, 2050년 여름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50년 여름 아이들과 노인이 안전하게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으려면 아스팔트와 같은 일상적인 소재부터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그밖에 우리를 둘러싼 소재의 상당 부분을 기후위기를 견디는 소재로 전환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기후 적응 기술개발의 목적을 어떻게 바라보고 전략을 세우는가에 따라 기술의 미래 가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술을 사용하는 경우 소모적인 지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관점을 전환하여 선도기술을 개발하고 선점하는 경우 관련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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