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름은 산허리에 걸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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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름은 산허리에 걸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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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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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옥근/의학박사
 
 처서가 지났건만 여전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윤 7월이어서 일까. 기상청은 다음달 중순까지 더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보한다.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나도 내자신이 이렇게 더위에 약한 줄을 처음 알았다. 평소 같으면 자연풍이 좋아 차안에 에어컨을 틀지 않을 날씨인데도 나도 모르게 손이 에어컨 스위치로 간다. 며칠전 태풍 `우쿵’이 울산연안에 상륙, 동해안 쪽으로 진로를 틀면서 비,바람이 쏟아지던 날, 나는 새벽 2시경에 장대빗소리에 잠을 깼다.찜통더위에 너무 시달렸던 탓에서 일까. 태풍 `우쿵`이 몰고온 비,바람이 피해는 안중에 없이 너무 좋기만 했다. 집 창문을 두 쪽 다 활짝 열어 재끼고 큰손님 맞듯 정원수 넓은 잎에 부딪혀 두둑거리는 시원한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마도 심신이 더위에 지친 반작용 이였을까 싶다. 계절은 속일 수 없듯 태풍`우쿵’이 지나가고 모기 입이 비뚤어 진다는 처서가 엊그제 지나면서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새벽녁엔 창문을 닫아야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전국 곳곳에 물난리를 일으킨 여름장마도 찜통더위도 처서 계절이 몰고온 찬바람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듯 다 잊어 갈 것이다. 우리 민족은 잊기를 잘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첫애를 낳고 그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다시는 애를 낳지 않겠다면서도 나중에 보면 보통 열 자식을 넘게 낳아 함께 오붓하게 살고 있다.
 처서는 입추와 백로 사이에 있는 24절기 중 하나로 `처서에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했다. 이는 위로 오는 성장보다는 옆으로 퍼지며 영글어 가는 계절인데도 아직도 여름은 작별을 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을은 문턱에 반쯤 걸터있다. 낮에는 매미가 저녁에는 귀뚜라미가 나누어 합창을 하며 가는 여름, 오는 가을 보내고 맞는다. 그러나 저러나 가로 늦게 얻은 자식이 효자 노릇 한다고 뒤따라온 태풍 `우쿵’이 찌던 더위를 멈추게 했다. 그 뿐인가. 남해안 적조까지 해결하고 떠나갔으니 효녀 치고는 심청이 못지않은 효녀가 된 셈이다. 우리는 심봉사 처럼 세상을 못 보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태풍은 다 나쁘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지 않은가.
 그러나 오늘 좋은 것도 내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얼마나 많던가. 지내고 나면 이 또한 부증불감(不增不減)이 아니던가. 주말이면 언제나 여행을 떠나는 잘 아는 문우(文友)를 목욕탕에서 만났다. 왜 오늘은 어딜 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효석 문학관이 있는 평창에 숙소를 반달 전에 이미 예약해 놓고도 태풍 때문에 못 갔단다. 그렇지 `메밀꽃 필 무렵’을 쓰던 그 배경과 때가 지금과 거의 일치 할 게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여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공이 향기 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향토적 정서가 물씬 흘러넘치는 `메밀꽃 필 무렵’은 인간, 성, 자연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체를 이룬 마치 삼발이(鼎) 화덕 같은 점이 독자들을 경탄케 한다. 그래 그때도 그랬어, 오대산 노인봉을 갔다 오는 길에 이 근교를 지날 때도 산비탈에 메밀꽃들이 푸른 달빛아래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은 흐뭇한 달빛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평창은 내륙 고원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고 한다. 8월 평균기온이 24도 밖에 안 된단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한방에 기숙했던 형이 광산과를 다녔는데 여름방학 때에 그곳으로 실습을 나갔을때 자기가 근무했던 그 광산에서는 여름에도 장작불을 피웠다고 자랑삼아 했던 꿈같은 말이 더위를 잊고 싶은 간절함과 여름과 가을을 교차하는 시점에서 잠시 서로 감흥이 교차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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