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이 사과(謝過)의 용어로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80년대 이후 일본 정치인들에 의해서다. 한일간 외교 현안이 있고, 일본측이 한국측 비위를 맞추어야 할 일이 있을 때, 한국측이 선 과거사 사과를 요구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항용 입에 담는 말이 사과도 반성도 아닌 애매한 `유감’이었다. 때문에 유감이 `잘못했습니다’는 말이라도 되는 걸로 아는지 우리 정치인들도 내키지 않는 사과 요구에 몰리면 예외 없이 끌어다 쓰고 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임명동의안 절차 문제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여야는 꼬인 사안을 풀자며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피해갈 수 없었던지 그저께 이병완 청와대비서실장이 `절차적 문제를 챙기지 못해 국회에서 논란이 빚어지고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헌법재판소장 후보를 임명하면서 헌법도 몰랐던 `무식’에 대해 용서를 비는 사과일 수는 없다.
`송구’나 `죄송’이 알맞을 자리에 유감이 들어간 것이다. 말뜻대로라면 `우리 청와대가 저지른 국회논란 야기와 국민심려 유발에 대해 누군가를 향해 마음에 들지 않고 섭섭하고 불만스럽다’는, 어법에도 안 맞는 말이 되고 만다. 웃기는 건 또 있다. 이런 모순어법을 두고 애써 `사과’로 치부하려는 여당의원들의 `알아서 기는 해석’이 더 가관이다. 하긴 `유감’ 뜻도 모르는 사람들이 헌법조문을 어떻게 알겠는가.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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