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을 한꺼번에 가르치려면 매를 드는 게 효과적이라는 뜻을 몽괘 효사는 말하고 있다. 매를 사용하는 이유는 학생에게 오는 도적 같은 나쁜 유혹을 뿌리치도록 하기 위해서다. 중요한 것은 `격’의 정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 조절은 가르치는 자의 몫이다. 격몽(매질)의 방법이나 정도가 너무 과하면 곤란하다. 선량한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자칫 엄청난 후유증이나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몽괘는 격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을 `도둑을 막는 것’에 비유하고 지나치면 `도적이 되어버리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교직을 상징하는 `교편(敎鞭)’이란 말 자체가 수업할 때 쥐는 가느다란 막대기다. 지시봉(指示棒)도 되고 손바닥 따위를 따끔하게 때리는 매이기도 하다. 수업에 충실하지 못한 동몽(童蒙)을 `훈몽(訓蒙)’하는 것은 교사의 본분이다. 그 본분에 충실하려고 매를 들 수도 있다. 문제는 사랑의 매인가, 감정이 개재된 폭력인가다. 현대한국사회에서도 교사의 학생체벌은 논란거리다.
`담배 피우다 적발된 학생과 수업중인 교실문을 발로 쾅 차고 지나간 학생의 엉덩이를 막대기로 세대씩 때린 교사를 해임한 건 징계권 남용’이라는 판결이 그저께 대구지방법원에서 나왔다. 그 상황에서 때린 `엉덩이 세대’를 `교육의 매’로 인정해준 거다. 스승이 해임되게 만든 학생들은 모두 다른 건의 일탈로 인해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고 한다. 주역의 비유를 끌어대자면 교육청이 어설픈 법조문 앞세워 학생들을 나쁜 길로 유혹하는 도둑을 막아주려 한 교사를 되레 도둑으로 몰았다고나 할까. 이번 대구지법 판결은 반갑지만 스승의 매도 재판을 받아야 하는 교직현실이 삭막하고 씁쓸하다. 정재모/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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