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영일만에서 출발
자체 신기술 개발에 집중
꿈의 친환경공법 탈바꿈
철강신화 박태준 전 회장
“세계최고 철강사 돼달라”유지
`2020년 매출 200조원 달성과 글로벌 100대 기업 진입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지난해 창립 44주년 기념사에서 “오는 2020년 매출 200조원 달성과 글로벌 100대 기업 진입’이라는 `포스코 패밀리 2020 비전’을 밝혔다. 1968년 4월 1일 포항 영일만에서 포항제철소(주)를 창립한지 52년만에 포스코는 세계 100대 기업이 되는 것이다.
#창업기, 포항제철소 건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는 조국 근대화라는 국가적 목표에 당면했다.
조국 근대화에는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제철산업이 토대가 되어야 했다.
정부는 종합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 대한중석 사장에게 과제를 맡겼다. 충분한 면적과 지질, 항만, 철도, 도로, 용수 등 살펴본 후 포항 영일만으로 확정했다. 하지만 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과 선진 철강기술이 필요했다.
박태준 사장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제철소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대일청구권 자금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의 대가였다. 자립경제의 초석이 되고 국력의 상징이 될 제철소를 짓는 곳에 쓰는 것이니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 제철업계의 지원도 약속받았다.
1970년 4월 1일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 등이 제철소 착공 버튼을 눌렸다.
영일만에 힘찬 굉음이 울려 펴졌다.
제철소 건설이 시작되자 모래벌판 영일만에는 불도저와 덤프트럭, 수많은 근로자들이 밤낮없이 현장에서 땀을 흘렸다.
건설사무소는 마치 사막의 야전사령부처럼 보인다 하여 `롬멜하우스’라고 불렸다.
박 사장은 “실패하면 우리 모두가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만큼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향우 정신은 포스코가 위기에 봉착할때마다 위기극복의 원동력이 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포항제철과 관련된 모든 일은 박태준 사장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소신껏 처리하라”는 내용의 설비재량구매권에 서명해 힘을 실어 주었다. 이른바 `종이 마패’이다.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펑’하고 출선구가 뚫리면서 시뻘건 쇳물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에 첫 일관제철소의 쇳물이 열린 것이다.
눈물과 환호성, 만세소리가 공장을 가득 채웠다. 같은 해 7월 3일 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포항종합제철소 1기 준공식을 가졌다. 제철보국의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제철소 건설은 쉼없이 계속됐다. 1976년 5월에는 2기 설비가, 1978년 11월에는 3기 설비가 준공됐다. 3기 공사에는 하루 2만명의 인력이 동원됐다. 1981년 2월 4기가 완공됐다. 최초의 착공 이래 11년. 드디어 850만t의 생산능력을 갖춘 일관제철소가 완성됐다. 선진 철강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신기록이다.
#최첨단 시설의 광양제철소 건설
1981년 11월 제2 제철소 입지로 전남 광양만이 확정됐다. 광양제철소는 국내 최초로 바다위에 건설하는 공장이었다. 부지조성에 이어 1982년 9월 13.6㎞의 거대한 제방을 축조하는 호안축조 공사 착공식이 거행됐다.
이듬해 11월 12일 최종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됐다. 이후 지반보강을 위해 높이 40m의 육중한 모래기둥 타설기로 부지 곳곳에 98만개의 말뚝을 박아 지반을 다졌다.
1985년 3월 5일 착공한 광양제철소 1기는 1987년 5월 7일 준공됐다.
`포항에서 쌓은 기술 광양에서 꽃 피우자’는 건설 역군들의 열정이 빚어낸 산물이었다.
21세기를 겨냥한 최신예 제철소 건설이라는 슬로건 아래 지어진 광양제철소는 모든 공정이 자동화, 전산화된 꿈의 제철소였다. 이후 2, 3기에 이어 1992년 10월 2일 광양제철소 4기 설비가 준공됐다. 포항제철소는 다품종 소량 생산, 광양제철소는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방향을 잡았고 2개의 제철소가 서로 보완하며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의 위용을 갖추었다.
#대역사 완성,`포스코’로 사명 변경
포스코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1993년 4월 창립 25주년을 맞아 신포스코 창조를 발표했다.
조직을 슬림화하고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였으며 경영위원회, 사외이사제 등을 도입해 선진경영체제의 기틀도 마련했다.
포항공대(포스텍)와 포항산업연구원, 포스코를 잇는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등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면서 기술개발에 중점을 두었다.
생산과 기술 발전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글로벌 포스코의 면모도 갖추어 나갔다. 한국 기업 최초로 세계 금융시장의 관문인 월스트리트에 상장, 안정적인 자금확보와 국제적 지명도 및 신용도를 끌어 올렸다.
전략적인 해외투자도 확대해 나갔다.
중국, 베트남, 태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네수엘라 등 해외에 합작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인 글로벌 기업의 토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 지역에 원료 확보 등으로 해외진출은 더욱 확대됐다.
포스코는 2000년 10월 4일. 창업 32년만에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를 계기로 2002년 3월 15일 `주식회사 포스코(POSCO)’로 사명을 변경했다.
#기술의 포스코, 꿈의 제철공법 연구개발
21세기는 무한경쟁의 체제였다. 세계 시장은 철강산업에도 변화가 요구됐다.
포스코는 자체 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렸다.
1995년 이후 코렉스 공장과 미니밀 설비 가동, 용융환원제철 기술, 스트립 케스팅 기술 등 첨단 혁신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2006년 포스코는 세계 최초로 연연속압연기술을 상용화했다. 이 기술은 열연제품의 소재인 슬라브를 1차로 압연한 바(Bar)를 접합하여 연속으로 압연하는 기술로 종전의 압연공정에 비해 작업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더 단단하고 엷은 강판을 경제적으로 만들수 있는 신기술이다.
2001년 1월 30일 연산 60만t 규모의 파이넥스 데모플랜트(시험설비)를 포항제철소에 착공했다. 이후 2003년 5월 29일 준공된 데모플랜트는 파이넥스 1공장이 됐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2006년 제38주년 창립 기념식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며 여기에 철강산업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터전에 안주하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며 포스코의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이듬해인 2007년 5월 30일 파이넥스 2공장(연산 150만t) 준공으로 포스코의 기술력은 절정을 맞았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은 포항제철소에 직접 내려와 “포스코는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잘 보여준 모델이다. 영일만에서 철강산업에 불을 지핀지 40년만에 세계 철강사를 새롭게 쓰는 신화를 창조했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오는 12월 파이넥스 3공장(연산 200만t) 준공을 앞두고 있다.
파이넥스 공법은 고로 공법의 필수인 소결공정과 코크스 공정의 생략으로 저비용 고효율이다. 특히 친환경적으로 오염 배출량이 고로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다.
철강업계는 “파이넥스는 전세계 100년 전통의 고로 공법을 대체하는 신기술이다”고 평가했다.
포스코는 파이넥스에 이어 궁극적으로 `무탄소’ 공법을 연구개발 중이다. 철강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분리해 포집한 후 저정하는 이른바 이산화탄소 포집기술(CCC)이다. 오는 2014년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또 하나는 수소환원제철법이다. 이 공법은 산화(O) 상태로 보존되는 철광석에 일산화탄소(CO) 대신 수소(H)를 사용, 제철용 철광석 가공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2)가 아닌 물(H2O)이 나오도록 하는 것으로 이른바 무탄소 제철공법이다. 2050년을 목표로 연구 중이다.
박영수 포스코 홍보팀장은 “제철공정 3대 혁신 기술 가운데 파이넥스 공법은 이미 상용화됐다. 이제 이산화탄소 포집기술과 수소환원제철공법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조강량이나 매출액 증가 등의 경영 향상이 아닌 그야말로 기존 제철공법을 꿈의 친환경 공법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것이다.
#해외에 일관제철소 건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에 첫 해외 제철소를 건설한다. 지난 2010년 10월 28일 포스코는 인도 크라카타우스틸과 합작해 일관제철소 건설에 따른 부지조성 공사 착공식을 가졌다. 지분은 포스코 70%, 크라카타우스틸 30% 이다.
1단계 300만t 규모의 생산시설은 오는 12월 준공 예정이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동남아시아 최초의 일관제철소로 한 걸음 더 도약하고 새로운 성공 스토리 창출을 위한 첫 단추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지난 2월 세계적인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는 포스코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철강사로 선정했다. 4년 연속으로 경쟁력 평가에서 세계 1위에 오른 것이다.
이에 앞서 1999년 모건스탠리, 2000년에는 포브스지와 포춘지로부터 세계 최고 철강업체로 선정됐다. 2011년에는 포춘지로부터 `올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평가’에서 포스코가 한국 기업으로는 가장 높은 점수인 7.21점을 받아 국내 기업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경제전문지 코퍼레이트 나이츠가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한 `글로벌 지속가능 경영 100대 기업’에 포스코가 30위에 올랐다. 국내 조사에도 포스코의 이미지와 영향력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전설이 된 박태준. 2020년 글로벌 100대 기업으로
2011년 12월 13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1927년생으로 향년 84세.
박 명예회장은 `철강신화’의 주인공이며`제철보국’을 실천한 세계 최고의 철강왕이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으로 한 평생을 살다간 그의 가치관은 죽어서도 살아있다. 그는 “포스코가 세계 최고의 철강사가 되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2013년 4월 1일 포스코는 창립 45주년을 맞는다. 흔들림이 없으며 하늘의 뜻을 아는 불혹과 지천명의 중간이다. 포항에서 시작된 포스코의 쇳물 역정 45년은 불굴의 도전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그리고 2020년 `글로벌 100대 기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진수기자 jsl@hidomin.com
<포스코 45년 역사>--------------------------------------------------------------
▶포항제철소 건설
1967년 7. 종합제철소 입지 포항으로 확정
1968년 4.1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창립
1970년 4.1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착공
1973년 7.3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준공
1976년 5.31 포항제철소 2기 설비 준공
1978년 12.8 포항제철소 3기 설비 준공
1981년 2.8 포항제철소 4기 설비 준공
1983년 5.25 포항제철소 4기 2차 설비 준공
▶광양제철소 건설
1985년 12.5 광양제철소 1기 설비 착공
1986년 12.3 포항공과대학교 개교
1987년 3.3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창립
1987년 5.7 광양제철소 1기 설립 준공
1988년 7.12광양제철소 2기 설립 준공
1990년 12.4 광양제철소 3기 설립 준공
1992년 10.2 포항제철 4반세기 대역사 종합 준공
▶대역사 완공 이후
1994년 10.14 뉴욕증시 상장
1995년 9.1 포스코센터 개관
1995년 10.27 런던증시 상장
1999년 3.31 광양제철소 5고로 준공
2000년 10.14 민영화 출범
2002년 3.15 사명변경
(포항제철주식회사→ 주식회사 포스코)
2003년 6.2 윤리규범 선포
▶세계가 인정하는 기업으로 성장
2003년 11.7 포스코차이나 출범
2004년 10.15 포스코재팬 출범
2006년 11.22 장가항포항 스테인리스 일관생산설비 준공
2007년 5.30 포항제철소 파이넥스 2공장 준공(연산 150만t)
2008년 9.4 세계 최대 발전용 연료전지 공장 준공
(포항 영일만 배후 산업단지)
2009년 8.6 멕시코 CGL 준공
2009년 10.19 베트남 냉연공장 준공
2011년 3.28 광양제철소 후판공장 준공
2011년 6.28 파이넥스 3공장 착공(연산 200만t)
2011년 7.26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착공
2011년 9.28 터기 스테인리스 냉연공장 착공
2011년 10.17 제철소 생산부문 전부서
4조 2교대 근무 체제로 전환
2012년 1.25 글로벌 지속가능 100대 기업 선정
2012년 3.7 베트남 스테인리스 냉연공장 준공
2012년 5.28 포스코, 가장 존경받는 한국 기업 1위 선정
2012년 5.28 인도 CGL 준공
2013년 4.1 포스코 창립 45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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