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조선 중기 사람 정민수(鄭民秀)는 불우한 선비였다. 언젠가 박연폭포에 놀러갔다가 마침 거기에 모여 시작(詩作)놀이를 하고 있던 양반 무리들에게 술 한 잔 얻어먹으려 다가갔다. 남루한 꼴을 업신여긴 선비들이 ‘네가 시를 아느냐’며 교만을 떨었다. 정민수가 쓰기를 ‘날아서 곧게 삼천 척을 내려오니,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일까’라 했다. 양반 무리들이 싸늘히 웃었다. 이태백의 절구 ‘망여산폭포’의 일부였으니 더 들을 필요가 없다고 단정해버린 거다.
정민수의 시는 이어졌다. ‘이태백의 이 시구를 여기서 지금 막 증험(證驗)하고 있으니, 중국의 여산폭포가 반드시 우리 박연폭포보다 나을 것이 없구나’ 이 마지막 두 구절을 읽은 선비들이 놀라 그를 상좌에 앉히고 술을 따르며 존경했다고 한다. 지봉유설에 전하는 시화(詩話)다. 흔히 ‘박연폭포시’라 일컫는 이 한시는 절반인 기 승 두 구가 이태백의 시를 옮겨 적었지만 나머지 전 결 두 구로 완전히 다른 시로 만들었다. 오늘날의 시 이론 용어로 패러디시(parody詩)인 셈이다.
우리나라 정치판에 남의 말 안 들어주고 자기말만 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건 새삼스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잇단 청년층과의 접촉강화 행보에 나서 주목되고 있다. 서울 두 곳에 이어 엊그제는 부산 해양대학교에서 젊은이들과의 토크콘서트를 가졌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새누리당이 청년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는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청년들의 말을 많이 들으려고 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고 좋은 말이다. 상대방 말을 지레 예단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끝까지 듣다보면 조선시대 정민수의 저 박연폭포시처럼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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