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셨나요. 나하고 자식하고 운수 기구히 어찌 살라하고 다 버리고 먼저 가셨는지요. (중략) 언제나 함께 누워 내가 말하기를 “보셔요,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하기가 우리와 같을까요?”했었지요. 어찌 그런 일을 생각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아무리 해도 내가 살 길이 없으니 곧 날 데려 가셔요. 이 편지를 읽는다면 부디 내 꿈에라도 나타나서 내가 자세히 보게 해 주셔요.’
조선 여인이 죽은 남편에게 쓴 편지글의 부분이다. ‘원이엄마의 편지’로 불리는 이 글은 1998년 4월 토지개발공사가 안동시 정상동 일대에 주택단지를 조성하면서 묘지를 이장하던 중 발견했다. 1586년에 31세로 죽은 고성 이씨 이응태(李應台)의 미라 가슴 위에 놓여 있었고 옆에 그 여인의 머리카락을 섞어 삼은 미투리(삼이나 노끈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 한 켤레도 있었다. 남편이 병을 털고 일어나면 신기고 싶었으리라. 편지글을 읽는 이의 눈시울이 젖어온다. ‘아름다운 슬픔’이란 모순형용이 허용된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편지가 발굴된 정하동 귀래정 부근 부지 2118㎡ 에 ‘원이엄마 테마공원’이 조성되었다. 현대어로 풀어쓴 편지글, 옥쌍가락지 조형물, 반원형 야외무대, 조경시설 등속을 수수하게 갖춘 도심 속 공원으로 원이엄마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사연(辭緣)이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감동 그 자체인 만큼 가족과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공원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는다. 유교전통 문화가 그윽이 살아 숨 쉬는 안동에 다시 또 하나의 유서 있는 명소가 만들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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