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토해내고 또 다른 삶을 맞이하다
  • 이경관기자
아픔을 토해내고 또 다른 삶을 맞이하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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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공간서 인물들 상처 꺼내 보듬어… 단편 8편

 

저녁 식사가 끝난 뒤
함정임 지음 l 문학동네 l 224쪽 l 1만2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만남과 이별, 그 어긋남 속에서 삶은 이어진다.
 중견 소설가 ‘함정임’의 8번째 소설집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상실의 시간과 아픔에 대해 노래한 작품들이 가득한 이 책에는 지난 2007~2013년까지 각 지면에 발표한 단편 8편이 담겼다.
 특히 단편 ‘저녁식사가 끝난 뒤’와 ‘기억의 고고학-내 멕시코 삼촌’은 2012년과 201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스스로 ‘노마드’를 자처하는 함정임은 이번 책에서도 세계 곳곳을 누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프랑스 브장송, 네팔의 산정호수, 멕시코, 부산, 경주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인물들의 상처를 꺼내, 보듬는다.
 “쿵작쿵작. 공기주름통이 가슴에 닿자 마치 사람처럼 체온이 느껴졌다. 나비야, 나비야. 멕시코 삼촌이 무등을 태워주기 위해 나를 번쩍 들어올렸던 그날처럼, 춘아 고모가 뼈가 으스러져라 껴안아주던 그날들처럼, 나는 아코디언을 안은 채 전율을 느꼈다.”(26쪽)
 단편 ‘기억의 고고학-내 멕시코 삼촌’은 멕시코로 떠난 애인을 평생 기다렸던 고모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오랜 연인과 헤어진 뒤 오는 균열과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멕시코 삼촌이 켜던 ‘아코디언’과 같은 것을 사, 방에 놓아둔다. 그것은 부모를 대신해 자신을 보듬어 줬던 고모와 멕시코 삼촌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자 ‘나’가 외로움을 달래는 하나의 행위였다.

 표제작 ‘저녁 식사가 끝난 뒤’는 P선생의 주선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떠난 P선생을 추모하는 이야기다.
 “모두 당신처럼 기다리다 놓친 거라고 생각하지 않소? 그리고 기다리다 놓치기도 하는 거요. 그게 무엇이든…… 난 그게 더 나을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52쪽)
 특히 이 소설은 4년 전 함정임이 프랑스 알베르 카뮈의 무덤에 다녀오는 길 박완서 선생의 부고를 받았던 상황을 모티브로 했다.
 소설은 P선생을 추모하는 식사를 준비하는 주인공 ‘순남’의 모습을 관조하듯 그렸다. 이날 P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8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그를 떠올릴 수 있는 음식과 시, 음악을 함께 하고 나눴다. 그저 평범한 저녁식사처럼.
 떠난 사람을 추모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마냥 우울하지 않다. 함정임은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상실의 빈 공간은 추억으로 채워지고 또 그것은 남은 사람들에게 일상을 살아갈 힘을 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국인 가정의 한국인 입양아 ‘무일’이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후 죽어가는 노인과 함께 집을 쓰며 양아버지와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그는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를 비롯해 우연히 옛 인연의 부고를 듣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오후의 기별’ 등이 수록돼 있다.
 함정임은 “마치 너무 웃지 않아서 웃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202쪽)과 같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끊임없는 상실을 통해 그린다.
 그녀는 말한다. 아픔을 토해내야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부르짖고 또 부르짖는 그녀의 통곡이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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