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
  • 정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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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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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조선 초기 수양대군은 단종을 보필하고 있던 다수 충신을 쇠망치로 죽이고 왕위를 뺏어 임금(세조)이 되었다. 왕위찬탈 과정에서 벌어진 살육의 피바람을 계유정난(癸酉靖難)이라 한다. 이 계유정난 때 수양이 죽인 사람은 그의 책사 한명회(韓明澮)가 작성한 생살부(生殺簿)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이었다. 좌의정 김종서,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 찬성 이양 등이었다. 수양의 아우 안평대군도 귀양을 갔다가 나중에 사사됐다. 
 연려실기술에는 1453년 10월 10일의 그 상황이 실려 있다. 같은 내용이 선조 때 이정형(李廷馨)이 편찬한 동각잡기(東閣雜記)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수양은 군사를 세 겹으로 세우고 세 겹의 문을 만들었다. 한명회는 생살부를 펴고 문의 안쪽에 앉았다. 여러 재신(宰臣)이 단종의 부름을 받고 들어오는데, 첫째 문에 들어오면 따르는 하인들을 떼고, 둘째 문에 들어왔을 때 이름이 생살부에 실렸으면 홍윤성, 구치관 등이 쇠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생살부’는 요샛말로 살생부다. 죽일 사람의 명단을 적은 장부를 말한다. 그런데 생살부와 살생부는 의미상 차이가 있다고 어느 언론인은 쓴 적이 있다. 생살부는 ‘살릴 사람은 살려놓고 연후에 죽일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살생부는 ‘죽일 사람부터 죽이고 나중에 살아남는 자는 살린다’는 뜻이라는 거다. 그게 그거 같지만 따져보면 전자는 최소한 산목숨을 존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풀이였다.
 살생부라는 살벌한 말이 지금 우리 정치판을 뒤덮고 있다. 총선 공천 문제를 두고 새누리당 친박과 비박 간에 갈등이 노골화되고 있는 가운데 엊그제 정두언 의원이 내뱉은 한마디가 곧 ‘공천살생부’다. 정 의원이 김무성 대표로부터 들었다며 밝힌 말은 짧지만 내용이 복잡하다. 자신을 포함한 의원 40명의 공천 탈락자 명단, 곧 살생부가 청와대 쪽에서 전달돼 왔다더라고 한 것이다. 당소속 현역의원들을 으스스하게 만드는 이 말의 파장은 우여곡절을 거쳐 봉합되는 듯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살생부의 진실여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공천자 가 발표되는 날 정 의원이 흘린 살생부의 존재가 사실인지 아닌지 가려질 것이다. 구경꾼들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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