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 입은 후보들
  • 정재모
흰옷 입은 후보들
  • 정재모
  • 승인 201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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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1860~1925)은 미국 변호사 출신으로 1890~1892년 민주당 하원의원을 지냈다. 1896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민주당 전국전당대회에서 금본위제만이 통화의 건전성을 보장한다는 주장들을 반박하며 “인류를 황금의 십자가에 못 박아서는 안 된다”고 외쳐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대선 기간 내내 그는 흰옷을 입고 유세하며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의 정경유착을 비난하며 뛰었지만 결국 월스트리트가 전폭 지지한 공화당 월리엄 매킬리 후보에게 졌다.
 공직후보와 흰옷의 관계는 유래가 매우 깊다. 라틴어 ‘캔디다’는 흰색이란 뜻이며 캔디다투스(candidatus)는 ‘흰옷을 입은’이란 뜻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 지배계급의 공식복장 토가(toga)는 대개 표백하지 않은 양모로 지어 누리끼리한 갈색이었다. 그런데 공직에 나서고 싶은 사람들은 결백 정직 지조를 보여주는 의미로 하얀 토가를 입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갈색 토가에 흰 석회가루를 뿌려 입었다. 어쨌거나 오늘날 후보자를 뜻하는 단어 캔디디트(candidate)는 여기서 유래했다.

 흰옷은 우리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백의민족이라 했으니 흰옷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알만하다. 흰색은 깨끗해서인지 제사를 지내는 자리 같은 경건한 시간과 장소에서는 지금도 흔히 즐겨 입는다. 한편으로는, 흰옷은 비단옷이 아니란 점에서 무지렁이 백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장군감이 되는 이가 계급이나 직위도 없이 일개 병졸로 전투에 참여하는 걸 두고 백의종군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여기에 닿아 있다.
 4·13총선을 앞두고 흰옷 입은 후보자들이 여기저기서 선거운동에 바쁘다. 극심한 공천 내홍을 겪은 여당 공천에서 떨어진 무소속 후보들이 원래 입고 있었던 빨간색 점퍼를 벗어버리고 흰옷을 걸치고 있는 것이다. 자기네들이야 약자 코스프레로 ‘백의종군’ 비슷한 처지를 표현하고 싶겠지만 유권자들이 보기엔 갈색 토가에 흰 석회가루를 뿌려 입었던 저 로마시대의 선거꾼들이 먼저 연상된다. 갈색토가에 석회가루를 뿌린 데 대해 누군가가 말했다고 한다. ‘회 칠한 야망!’ 지금 흰옷 입고 뛰는 후보들이 바로 그 짝 아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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