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서 이 근엄한 `염치’는 네 귀퉁이가 조금씩 부서져 나가더니 빛바랜 말이 되고 말았다. `얌치’가 되더니 `얌통머리’라고 군소리까지 매단 채 격하되고 말았다. 언어의 축소지향 현상은 여기서도 힘을 쓴다. `얌체’가 태어난 것이다. `얌체’는 `없다’가 따라붙지 않아야 오히려 그뜻이 확실해진다. 말의 뿌리를 캐보면 본래의 뜻이 뒤틀려도 이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싶을 지경이다.
염치고 뭐고 아랑곳없는 사람을 낮춰버리면 얌체가 된다. 요즘 걸핏하면 태어나는 `족(族)’ 가운데에도 `얌체족’이 있다. 용례(用例)사전에 이런 신문기사가 올라있다.“쓰레기 종량제 실시이후 공공장소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얌체족이 크게 늘었다./ -/역무원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화장실 승강장 쓰레기통에 버리고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이런 사람은 누가 봐도 얌체고 얌체족임에 틀림없다.
이 얌체(족)들이 요즘엔 몰래 버리는 대신 몰래 들고튀는 짓들을 일삼고 있다는 보도다. 청송 국도31호선 현동~부남면 사이 12킬로미터가 피해지역이라고 한다. 청송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기증한 옹기장독대, 뒤주, 쇠죽 통 같은 볼거리와 야생화까지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니 마음이 삭막해진다. 이엉잇마저 벗겨간 원두막 지붕은 또 어떻고.
`낯가죽이 두껍다’거나 `뱃가죽이 땅 두께 같다’는 말이 있다. 욕심낼 게 따로 있지 참으로 노래기회(膾)도 마다않을 얌체(족)이다. 이것도 자동차가 많아진 탓인가.
김용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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