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딸은? 이 말뿌리를 신체어(身體語)의 발달로 보는 학자도 있고, 팽창 개념을 지닌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면서도 옛날부터 딸 대접은 시답지 않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경(詩經)에서 이런 생각의 단면을 찾을 수 있다. “이리하여 계집아이 태어나거든/ 맨바닥 땅바닥에 잠자게 하고/포대기로 두르고 기저귀 채워/실감개나 주어서 놀게 하리라/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뿐일세/ 술 데우고 밥짓기나 익히게 하여/ 부모 걱정 안하게 가르치리라.”
이렇게 자란 딸 아이가 시댁의 대를 이어주지 못하면 원인과는 관계없이 그 책임을 뒤집어 쓰고 죄인이 되고 마는 게 전래의 풍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딸이 아들을 내려다 보는 세상이 됐다.매 맞는 남편이 늘어난다는 최근 통계도 있지 않은가.
아들에 목을 매다시피하는 사람들이 딱해보여 `딸사랑’을 강조하는 글을 몇 번 쓴 생각이 난다. 노랫말을 빌어 “아들이 좋다지만 딸이 더 좋아”라거나 “딸이 더 좋은 세상이 곧 온다”고 점쟁이 노릇까지 한 일도 있다.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실제 상황이 돼버렸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아들이 없어도 무관하다’는 응답이 49.8%까지 올랐다니 하는 소리다. 보수성향 강한 경상도의 가치관 변화는 어떤지 궁금해진다.
소박(疏薄)은 처나 첩을 박대한다는 뜻이다. 이 말에서 나온 소박데기는 남편에게 소박을 맞고 친정으로 쫓겨온 여자를 말한다. 여성의 위상이 높아지는 속도를 보면 머잖아 소박이란 말이 고어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김용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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