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토록 거대한 성도 변변한 구실을 하지 못했다. 만리장성이 세워진 후 중국은 여러 번에 걸쳐 이민족들에게 완벽한 침입을 당했다. 그들은 성벽을 무너뜨리거나 기어오르지 않았다. 진시황의 폭정에 불만을 가진 병사들에게 뇌물을 주자 문지기들이 스스로 성문의 빗장을 풀어주었고 그들은 활짝 열린 성문을 통과하여 곧바로 진격했을 뿐이었다. 적들은 굳건한 성벽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그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의 마음을 무너뜨린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에 대한 말을 무수히 듣는다. 좋은 배우자를 얻으려면 먼저 마음을 얻어야 한다. 어떤 어려운 일에 맞닥뜨릴지라도 마음먹기 나름이다. 마음이 병들면 몸도 병이 든다. 얼굴보다 마음이 고와야 된다는 등의 말들이다. 그럼 마음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마음이라는 단어만큼 다양한 뜻을 지닌 명사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 사람의 기억 따위가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해석들을 가지고 있다. 만약 누군가 내게 마음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가슴에 머무는 의식구조”라고 말하겠다. 고뇌하고 생각할 때에는 머리가 아팠지만 감동될 때에 벅차오르는 것은 가슴이었고, 허무할 때에 텅 빈 곳도 가슴이었으며, 슬플 때에 저리고 아픈 곳도 가슴이었다. 눈물에 젖어 질퍽거리던 삶의 여러 고비에서 주저앉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일어섰고, 진창 같던 내 삶의 지침을 돌려놓은 것도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년에 온 세상을 주유하고 돌아와 제자들에게 “하늘도 문제가 아니고 땅도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것은 오직 사람마음의 문제로다”라며 탄식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극렬한 전쟁터는 인간의 마음속이다. 증오와 시기, 근심과 불안, 열등감, 의욕상실, 패배감들이 뒤엉켜 싸우는 곳이다. 그러므로 황금궁전에 살아도 마음이 괴로우면 지옥이 되고, 오두막에 살아도 마음이 평화롭고 부유하면 천국이 된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온통 어수선하다. 얼어붙은 경제로 자영업자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고 국민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더욱 움츠러들었다. 이럴 때 일수록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가지자. 참고 기다리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리는 것을 믿으며 살자. 마음을 지키는 것이 결국 삶을 지키고 인생을 지킨다. 삶에서 끝이란 돈을 잃음도, 명예를 잃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끝은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나치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시체를 태운 재가 높은 굴뚝에서 진눈깨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참혹한 생지옥에서 살아남았던 빅터 프랭클린 박사가 한 말이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곧 쇠약해졌다. 노동력을 상실한 그들은 곧바로 가스실로 끌려갔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절망에 허덕이는 다른 사람들까지 격려하며 끝까지 건강을 유지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고.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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