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와 알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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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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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켈리의 ‘I believe I can fly’를 들으며
총각 떡볶이

나의 스무 살을 떠올리면, 지난 주말 즐겼던 술자리의 마지막 잔처럼 가물가물하다.

‘무척 즐거웠겠지, 꽤 대책 없었겠지, 민망하여라, 응 걷잡을 수 없었어.’

그러나 그건 현실에서 분명하게 일어났고, 그랬기에 여태 수습하는 중이다. 나의 과거를 바꾸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나는 그 시기를 정확하게 통과하여 현재에 도착해 있다.

나이가 무기인 마냥 내 안의 감정을 마음껏 휘두르고 다녔던 나의 스무 살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떡볶이와 알앤비(rhythm and blues)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조합이냐고 묻는다면 할말이 조금 있다. 뜨겁고 새빨간 양념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알앤비에 빠져버렸던 나의 스물, 나는 ‘총각 떡볶이’라는 분식계의 아이돌을 꿈꾸고 있었다.

학교 앞 소나무는 그야말로 대학가의 메카로 스쿨버스 정류장이 있고, 고등학교와 이어지는 오르막이 있고, 치킨집이 모여 있었다. 일식집이나 독서실 실장 등의 아르바이트로는 성에 차지 않았고, 용돈도 넉넉하지 않았던 터라 친구와 나는 떡볶이를 조리해서 팔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낸 독서실 사장님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에 소형 트럭을 개조하여 분식집 주방으로 만들었다. 가스와 팬을 설치하고, 뜨끈한 어묵 국물을 끓일 수 있는 냄비도 마련했다. 우리의 메인요리는 매운순대떡볶이+메추리알. ‘총각 떡볶이’라고 새겨진 앞치마를 입은 우리는 그야말로 분식업계에 정면으로 뛰어든 셈이었다.



I believe I can fly

지금은 푸드트럭으로 인정을 받은 가게도 많고, 특화된 떡볶이 프랜차이즈도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떡볶이 장사는 그다지 주목 받는 분야는 아니었다. 그저 간식거리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펼쳤다. 간드러진 알앤비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것이었다. 내가 선곡한 노래는 앨리샤 키스와 시스코, 보이즈 투 맨과 스티비 원더, 그리고 바로 알 켈리였다. 우리는 남자 세 명이 시작했기에 보이즈 쓰리 맨이라 해도 좋았지만 어쨌거나 총각 떡볶이는 그야말로 대박, 오픈한지 세 시간만에 완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내친김에 조금 더 과감한 발상을 냈다. 배달을 하는 것이다. 5000원 이상 무료배달하겠다는 이 시도는 확실한 수익을 창출해주었다. 가까운 여고에서, 대학 연구실에서, 기숙사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나는 그 와중에 알앤비에 더욱 심취하고 싶은 마음에, 흑인음악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아, 이 무슨 당돌한 스무 살의 패기인가. 나는 이백 명이 동시에 듣는 수업에서 자발적으로 단상에 올라가 ‘총각 떡볶이’ 앞치마를 입고 ‘I believe I can fly’를 불렀다. 점수 잘 주기로 유명했던 철학과 교수님은 이 청년이 기특했는지, 거의 유일하다시피 F를 줬다. 바로 그러한 점수 덕에 여태껏 악을 쓰며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리드머의 탄생

돌이켜보면, 떡볶이 배달이건 푸드트럭이건 멋진 발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당시는 치열하다 못해 옹졸했던 순간도 많았다. 상인연합회에서는 우리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이리저리 밀려난 노점은 결국 그 동네에서 퇴출당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생업에 종사하는 상인들과 충돌도 겪고, 떡볶이 소스는 자꾸만 팬에 달라붙고,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은 이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단 두 달 만에 트럭을 팔고 알앤비의 재생을 끝냈다.

여행이 끝나면 길이 시작되고, 길이 끝나면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고 어느 소설가가 말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떡볶이는 잠시 접어두었지만, 그 비법은 내 몸에 각인해두었다. 또 하나, 알앤비 동아리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나와 비슷한 열망을 가진 또래들이 많았다. 열 명, 스무 명을 모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사이에 벌써 해가 지나버려, 나의 스무 살도 끝이 났다. 그러자 새로운 스무 살들이 더 큰 패기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흑인음악 동아리를 제대로 완성해보자고 나에게 도움을 청했고, 우리는 그렇게 리드머(Rhythmer)를 만들었다. 우리의 열정은 떡볶이보다 천만 배는 맵고 뜨거웠다. 나는 그해 대학 공연에서 ‘I believe I can fly’를 불렀다. 누구도 내가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두 달 만에 사라진 ‘총각 떡볶이’의 그 총각이라는 걸 몰랐지만, 그럼에도 후렴구에서는 손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불러 주었다.

“I believe I can fly, I believe I can touch the sky.”

나는 아주 잠깐 나는 기분이 들었다. 바로 지난주 술자리에 있었던 일처럼 까마득한 17년 전의 나는.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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