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사실상의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철회하는 헤프닝까지 벌어졌다. 이는 용병 그룹의 지도자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군사 대국이자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인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1991년 8월 18일 소련 공산당 보수파들이 크림반도에서 휴양 중이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구금하고 쿠데타를 감행했다. 3일 만에 끝난 이 쿠데타 하나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위신을 떨어뜨렸다. 전 세계를 벌벌 떨게 했던 소련 대통령이 일개 신인 정치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 연방 대통령에게 삿대질을 당하는 치욕도 맛보았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구금된 나비 날갯짓 하나가 같은 해 12월 25일 소련 연방이 해체되는 비운을 만든 것이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엄석대는 폭력과 회유로 동급생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학급의 왕노릇을 하였다. 새로 부임한 김 선생에 의해 그의 권위가 무너지자, 어제까지 셔틀을 하던 동급생들이 하이에나들처럼 그를 물어뜯었다.
차르나 다름없었던 푸틴 대통령은 지금 의연한 척하지만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다. 자신의 요리사였던 삼류 깡패에 불과한 프리고진에게 벌벌 떠는 모습을 전 러시아인들은 똑똑히 지켜보았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강한 차르 앞에서만 절대적인 복종을 한다. 미친 수도승 라스푸틴에 의지한 나약한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결국 처형을 당했다. 결과적으로 괴승 라스푸틴이 위대한 러시아 제국을 몰락시킨 것이다.
나는 소련 유학 1세대로 10년 동안 고르바초프, 옐친, 푸틴 대통령 시대를 모두 경험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 대한 열망으로 미국 대신 러시아를 선택했고, 누구보다도 러시아를 사랑했다. 하지만 유학 말미에 러시아에는 ‘내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도 저축하지 않고, 사업가들은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23일 한 일간지에 <러시아를 위한 노래 누가 부를까>란 장문의 에세이를 기고한 적이 있다. 글에서 러시아의 한심한 실상에 대해 적나라하게 밝혔었다. 그때 동료 러시아 전문가들은 내가 너무 부정적인 면을 편향되게 봤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지금 방송에 나와 크렘린 대변인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외국에서 유학하면 그 나라 편을 드는 편향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러시아 운명이 자신의 운명과 결부되는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러시아학과 교수는 러시아에 대한 가치중립적인 시각이 돋보인다.
다시 미래에 대해 감히 전망하자면 1991년 소련처럼 러시아 연방은 다시 해체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실각하든 말든, 그 누가 권력을 잡든 말든 러시아 연방은 그 운명이 다했다. 고르바초프 이후의 옐친과 푸틴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비공식적으로 세계 최고 갑부가 푸틴 대통령이란 사실 하나만으로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수 있다. 지도자만 탓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반인륜적인 학살이 이뤄져도 환호했던 러시아 국민들 수준이 딱 그 정도이다. 히틀러가 무력으로 총통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독일 국민의 투표로 희대의 학살자를 뽑은 것이다. 러시아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1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묻는다. 러시아를 위한 노래, 누가 부를까? 한승범 버네이즈 아마존출판대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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