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 안동 떠나 만주벌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 김희동기자
‘삶의 터전’ 안동 떠나 만주벌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 김희동기자
  • 승인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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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은 한국 독립운동 발상지로
유공자 357명 배출 ‘전국 최다’

‘항거 시인 이육사’ 문화관·생가
‘추강 김지섭’ 생가는 풍산읍에

일제 아픈 역사 간직한 임청각
시, 2025년까지 280억원 투입
중앙선 철로 놓기 전 모습 복원
-대구경북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아서-
사적지를 통해 보는 독립운동 활동의 흔적
일제가 독립운동 정기를 끊겠다며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을 철거하고 임청각 마당 한가운데에 가설한 중앙선 철길이 임청각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1년 8월 임청각 앞마당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완전히 철거했다.
일제가 독립운동 정기를 끊겠다며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을 철거하고 임청각 마당 한가운데에 가설한 중앙선 철길이 임청각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1년 8월 임청각 앞마당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완전히 철거했다.

국외 무장 독립운동으로 대한독립군(홍범도), 북로군정서(김좌진),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 한국독립군(지청천), 조선혁명군(양세봉), 한국광복군(지청천) 등이 있다.

최근 육군사관학교 내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 또는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과 항일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등의 흉상이 있다. 홍범도 장군은 지난 2021년 8월 15일 카자흐스탄이 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사후 78년만에 봉환됐으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국방부도 청사 앞에 있는 홍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신형 잠수함인 ‘홍범도함’의 이름을 바꾸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홍 장군이 과거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야당 일부 인사들과 일부 인권단체들은 이 조치에 반대하고 있으며, 홍범도의 공산당 경력과 관련해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 을때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국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두려움 없이 목숨을 던진 그들의 헌신과 희생은 독립운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안동의 독립운동 사적지

안동은 한국 독립운동의 발상지며 1894년 첫 의병이 시작된 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357명의 독립유공자와 10명의 자정순국자를 배출했다. 1900년대에는 구국계몽운동과 만주로 망명해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이육사(본명 이원록)시인은 윤동주, 한용운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저항 시인으로 유명하다. 이육사 문학관 전경.
이육사(본명 이원록)시인은 윤동주, 한용운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저항 시인으로 유명하다. 이육사 문학관 전경.

1896년 예안현에서는 안동부와 별도로 의병이 일어났는데 그 명칭이 선성의진이다. 3차 선성의병 의병소-삼백당은 1896년 9월 안동부 관군들에 의해 소실됐다. 안동시 도산면에 민족시인이면서 의열투쟁가인 이육사가 태어난 생가 터가 이육사문학관 가까이 있다.

안동군청 지도
안동군청 지도

1910년 10월 향산 이만도가 단식 순국한 이만도 순국지와 그가 살았던 향산고택 이 안막동에 있다. 그의 뜻을 이어 독립운동을 편친 아들 이중업, 며느리 김락, 손자 이동흠과 이종흠이 살던집이다.

1907년부터 1928년까지 애국계몽운동과 민족주의 독립운동을 펼친 류인식이 태어나 살던 생가터가 있으며 만주로 망명해 백서농장·서로군정서·정의부 등에서 활약한 김동삼이 태어난 생가터가 있다.

협동학교 임시교사- 백하구려는 백하 김대락의 생가로 임하면 천전리에 있으며 1909년부터 1910년까지 협동학교 교사로 활용됐다. 그는 나라가 멸망하자 마을과 인근의 청장년들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다.

 


안동 봉정사길 지도
안동 봉정사길 지도

1907년 봄, 안동 임하면 천전리 가산서당에서 류인식·하중환·김후병이 설립한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인 협동학교가 설립됐다. 협동학교-가산서당은 안동지방 계몽운동의 요람이자 안동유림의 사상적 대변환의 갈림길이었다.

안동군청·경찰서·법원터 일대 3·1운동 만세시위지는 1919년 3월 23일 인동군민 3000여 명이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시위를 벌이다 일본군경의 총격에 30여명이 순국한 곳이다. 신간회 안동지회 창립지- 보광학교터는 1927년 8월 26일 회원 90여 명이 참여하여 신간회 안동지회 설립대회를 개최한 곳이다.

안동의병 창의지- 봉정사는 1896년 1월 17일 유림대표들이 안동의병을 창의하기 위해 면화를 열고 첫 논의를 한 곳이다.


 

풍산소작인회 지도
풍산소작인회 지도

풍산소작인회 창립지- 풍산학술강습회 사무실 터는1923년 11월 11일 안동지역의 농민운동을 이끈 풍산소작인회가 창립된 곳이다.

추강 김지섭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해 일본왕궁 앞에서 의열투쟁을 전개한 추강 김지섭이 태어난 생가터가 풍산읍에 있다.

 
 


 


▲혹독한 수난과 꺽이지 않는 역사 ‘임청각’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안동을 찾았다. 오전에 영덕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지와 광복회를 취재하고 지쳐 있었지만 고성이씨 종택 ‘임청각’을 찾아 가는 길은 기자의 당연한 의무감으로 마음을 재무장했다.

일제가 놓은 철길로 반 토막 난 임청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집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지내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독립투쟁의 토대를 마련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다.

일제가 놓은 철길로 반 토막 난 임청각은 2025년까지 예산 280억원을 들여 일제강점기 중앙선 철로가 놓이기 이전의 옛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현장 항공사진. 사진=안동시 제공
일제가 놓은 철길로 반 토막 난 임청각은 2025년까지 예산 280억원을 들여 일제강점기 중앙선 철로가 놓이기 이전의 옛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4일 현장 항공사진. 사진=안동시 제공

2025년까지 예산 280억원을 들여 일제강점기 중앙선 철로가 놓이기 이전의 옛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었다.

안동시는 지난 2017년 11월 고성이씨 후손 및 관계 기관의 전문가 등 16명 등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2018년 12월 임청각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임청각 주변 가옥과 토지를 매입했고 2021년 12월 임청각 정비 실시설계 용역을 마쳤다. 2021년 12월 구 중앙선 철로가 철거되면서 사업추진이 급물살을 타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영남산 기슭에는 고성이씨 종택 ‘임청각’이 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임청각과 군자정 현판은 퇴계 이황이 썼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이 아닌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인 99칸으로,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크고 오래됐다. 대한민국 보물 제182호로도 지정됐다. 이 고택은 독립유공자 11명을 배출하며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의 밑거름이 됐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 ‘서간도 바람소리’ 실경 역사극이 9월 9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안동 태사묘에서 상연된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이야기 ‘서간도 바람소리’ 실경 역사극이 9월 9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안동 태사묘에서 상연된다.

1910년 일제가 한일합병을 감행하자 1911년 당시 54세에 50여 명의 가솔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로 망명했다. 석주 이상룡은 “공자·맹자는 시렁 위에 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라고 했다. 사당의 신주를 땅에 묻고, 노비문서도 불태웠다. 무장독립투쟁 자금이 부족하자 아들을 다시 안동으로 보내 임청각을 2000원에 일본인 오카마 후사지로에게 팔고 군자금으로 보탰다. 얼어붙은 만주 땅에서 백만 동포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며 항일 독립운동단체 경학사를 만들어 독립정신을 일깨우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1925년 석주 이상룡은 초대 국무령을 맡았으나 다시 간도로 돌아와 무장 항일투쟁에 심혈을 기울였다.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2년 5월 길림성 서란현에서 74세에 순국했다.

석주 일가는 이상룡을 비롯해 부인 김우락, 동생 이봉희, 아들 이준형, 조카 이광민, 손자 이병화, 손자며느리 허은 등 3대를 거쳐 모두 11명의 독립운동 서훈자를 배출했다.

지난 14일 임청각 및 주변정비사업에 대해 최우진 현장소장이 공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14일 임청각 및 주변정비사업에 대해 최우진 현장소장이 공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 임청각 좌·우측 재현 가옥 2동을 복원하고 도로 및 주차장 정비가 이뤄진다. 또한,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로 연면적 800㎡ 공유관 건립도 추진된다. 공유관은 독립운동의 역사문화 가치를 재정립하고 문화·관광·교육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아서

독립운동가 손영학 지사의 삶과 헌신
광복회 손병석 안동지회장.
광복회 손병선 안동지회장.

손병선(71·사진) 광복회 안동지회장은 손영학(1895-1944) 애국지사의 손자다. 조국 독립을 위해 몸바친 선대를 둔 후손들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 조부와 관련된 자료집을 꺼내 놓는 얼굴은 어두웠다.

손 지회장은 “안동 사람이 펼친 독립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 51년을 거의 모두 담아내고 있다”며 “의병, 계몽운동, 만주지역 독립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열투쟁, 6.10만세운동, 민족문학 등 어느 한 분야도 빠지지 않고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고 말했다.

그의 조부인 손영학 지사는 1919년 3월21일 김정익(金正翼)·김정연(金正演)과 함께 안동군 길안면(吉安面) 천지(泉旨) 장날을 이용해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은 미리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과 태극기를 만들어 두었으나, 계획이 누설되어 천지에 있는 일본 경찰주재소의 삼엄한 주시를 받아왔다.

그러나 3월 21일 오후 3시경 계획을 강행하여 300여명의 독립만세 시위군중을 모아 그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행진하다가 면장과 면서기들도 시위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하여 면사무소로 행진했다. 그러나 미리 대기중이던 일본 경찰이 제지하자 그는 시위군중을 지휘하여 투석으로 면사무소 입구의 유리와 문짝을 파괴하였다. 오후 7시경에는 방향을 경찰주재소로 돌려 총기를 휴대하고 대기중이던 일본경찰과 충돌하였다. 이때 그는 김정익과 함께 주재소를 파괴하기로 협의하고 선두에 서서 투석으로 대항했으나, 일본 경찰이 총격을 가하여 시위군중은 부득이 해산하게됐다.

이에 그와 김정익·김정연 등 3인은 일단 피신해 의성읍내 박재하(朴在夏)의 집에 머무르면서 1920년 2월 상해 임시정부로 가기 위한 자금마련을 계획하던 중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됐다. 그는 천지시장 만세시위 주동자로서 1920년 5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와 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1926년 2월 유연복(柳淵福)과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활동하다 재차 체포돼 1927년 2월 3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도움주신분: 안동시청 공보감사실 손상혁 주무관, 최우진 임청각 및 주변 정비사업 현장소장.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3권(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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