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지방 의료체계, 이대로 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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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 지방 의료체계, 이대로 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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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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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정부는 병상 공급 과잉과 지역별 병상 공급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발표했다. 앞으로는 병원을 짓기 전에 시도에서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고,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분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맞는 대책이지만 너무 늦었다.

2026~2028년에 수도권에 짓기로 한 대학병원 분원 6600병상은 이미 허가를 받아서 새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대책으로 규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9년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2020년부터 도입됐어야 할 지역별 병상 과잉 공급에 대한 규제를 보건복지부가 3년 넘게 시행하지 않은 사이에 수도권 대학병원들은 규제를 피해 병원을 늘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수도권에 분원을 세우려는 대학병원들의 영향을 받아 정부가 개정된 의료법 시행을 미룬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이유가 어찌됐든 앞으로 3~5년 사이에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들이 지방 의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 지방의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체계를 빠르게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진료하는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 의사들이 경증환자와 비응급환자를 진료하는 동네병의원으로 빠져나가고 있다(2023년 7월 17일, “비급여 진료를 통제해야 의료붕괴를 막을 수 있다” 칼럼 참고). 실손보험과 맞물려 동네병의원 비급여 진료가 크게 늘어나면서 동네병의원 의사의 연봉이 대학병원 교수 연봉의 2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동네 병의원으로 의사를 빼앗기고 있는 지방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이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으로 대규모 의사 인력이 유출되면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24시간 당직을 서야 하는 체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의사의 수도권 쏠림이 얼마나 심각한지 찬찬히 살펴보자. 지난 5년간 의사는 약 1만명 늘어났는데, 그중 7000명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늘어난 반면 지방에서 늘어난 의사는 3000명에 불과했다. 인구당으로 따지면 수도권 의사 집중은 심각해서, 경기도를 제외한 도 지역 의사 수는 서울의 1/5밖에 늘지 않았다. 서울에서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0.37명 늘어나는 사이 도 지역 의사 수는 0.08명밖에 늘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방에서 늘어난 의사의 대부분이 경증환자를 진료하는 동네 병의원 의사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진료하는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의 의사는 거의 늘지 않았다. 환자가 늘고 중증 환자가 늘어나는 것을 고려하면 의사 한 사람이 진료해야 할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는 오히려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소아 진료 대란이나 응급실 뺑뺑이와 관련된 소아청소년과(이하 소청과)와 응급의학과 의사 수를 살펴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의사가 많은 수도권에서는 소청과 전문의가 늘어난 반면 원래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소청과 전문의가 거꾸로 줄어들었다.

수도권에선 전문의가 121명 늘어나는 동안 지방에선 오히려 62명이 줄어들었다. 더 큰 문제는 응급과 중증환자를 보는 소청과 의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을 제외하면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에선 소청과 전문의가 줄어들고 경증환자를 보는 동네 병의원의 전문의가 늘어났다. 이것이 소아 응급환자들이 밤에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 여러 병원을 전전하거나 입원을 못하는 이유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수도권에서 더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소청과처럼 지방에 비해 아주 많이 늘진 않았다. 하지만 서울을 뺀 나머지 지역에선 큰 병원에 있어야 할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절반 가량이 작은 동네 병의원에서 늘어났다. 전체 응급환자의 2/3, 중증 응급환자의 대부분을 진료하느라 늘 의사가 부족한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에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많이 늘지 않았고, 경증 응급환자를 주로 보는 동네병의원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늘어났다. 이것이 응급실 뺑뺑이가 계속되는 이유다.

지방 의료체계는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이라는 시한폭탄 앞에서 붕괴될 운명에 처해 있다. 앞으로 3년 후부터 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 서울대병원 같은 유명 대학병원의 분원이 수도권에 문을 열기 시작하면, 지방 대학병원 의사의 약 20~30%가 이들 병원으로 옮겨 갈 것이다. 지금도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지방의 응급환자, 중환자 의료체계는 그 기능이 마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부는 대학병원 분원 설립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병상수급대책 같은 보여주기식 정책만 내놓을 뿐 아직까지 아무런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방 의료체계가 붕괴하면 지방 소멸은 가속화될 것이다. 제대로 된 병원이 없는 곳에선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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