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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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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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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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폴란드 제2의 도시 크라쿠프에서 약 37마일 떨어진 곳, 40㎢에 해당하는 좁은 지역에 어느 날부터 수십 동의 허름한 막사가 줄지어 들어섰다. 1년여가 지나자 한 건물의 높은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막론하고 매일같이 잿빛 눈발이 주변에 휘날렸다. 바람이 없는 날 구석진 곳에는 발목이 잠기도록 쌓이기도 했다. 사실은 잿빛 눈발은 진짜 눈(雪)이 아니었다. 화장장에서 시신이 소각된 재가 날려 떨어진 것이었다. 수십 대의 트럭이 매일 재를 실어 날랐던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이 자행된 곳, 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다.

그곳에는 유대인 신분의 빅터 프랭클이라는 젊은 의사도 수용되어 있었다. 지독한 추위와 굶주림, 강제노동,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는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다했다. 그는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얼음을 깨어 얼굴에 문지르며 매일같이 면도했다. 건강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서였다. 나치는 조금이라도 병색이 있거나, 기력이 쇠하여 노동력을 상실하면 가차 없이 가스실로 보냈다.

그는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 동료 수용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라고 끊임없이 격려했다. 그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수용자들이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들의 눈에서 생명의 불빛도 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참혹한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수용자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상실하자 먼저 정신이 무너졌고 곧이어 신체도 면역력을 잃고 파괴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역시 세계 2차대전 때의 일이다. 영국과 미국의 포로 20,000명이 수용되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2년 만에 무려 8000명의 포로가 죽었는데 사인의 대부분이 영양실조나, 질병, 과로 등이 아니라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언젠가는 그곳을 탈출하여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근원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인간은 미래를 기대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삶을 지속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희망이다. 심리학자들 또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신이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괴롭고 불행하다면 아무도 일하지 않을 것이며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라면 투자하지 않을 것이고, 효용성이 없는 자격증이라면 취득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어 웃으려 해도 눈물이 먼저 베여 나오는 힘들고 괴로운 나날일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려움을 견디고 산다. 만약 모든 인류가 목적과 의미의 부재 상태, 즉 희망의 상실상태에 빠진다면 서서히 쇠락의 과정을 거쳐 결국 소멸에 이르게 되고 만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신의 단편 소설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인 천사 미하일을 통해 이렇게 해답을 내놓는다. “인간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걱정한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라고. 그렇다.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서로 긍휼히 여기고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인류 최고의 가치이다. 어느 누가 위대한 대문호가 내놓은 해답을 부정하랴! 그러나 삶에 대한 근원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보다 더 밑바탕에 있는 것이 희망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은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현상이 나무라면 희망은 뿌리이기 때문이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각종 모임이 잦아진다.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흔히 듣는 말이 “사는 게 재미가 없다”라는 말이다. 왜 그럴까?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으니 할 일도 없고, 할 일이 없으니 열정도 없다. 무미건조한 똑같은 패턴의 일상이 반복되는데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으랴!

희망이나 목적이 사라지는 곳에서 인간은 소멸한다. 이 소멸은 내적 붕괴를 의미하며 내적 붕괴는 신체의 건강도 잃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는 날까지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희망은 누군가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고 설정해야 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거나,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는 밋밋한 희망이 아니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이미 이루고 본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그 사람의 미래를 구축하고 건설해 나간다.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사람은 죽는 날까지 희망의 꿈길을 걸어야 한다. 가장 행복한 죽음은 황금 궁전에서 꽃다발에 파묻혀 죽는 것이 아니라, 꿈을 가지고 그 꿈길을 걷다가 그 길 어느 한 자락에 쓰러지는 죽음이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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