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는 한국인
  • 모용복국장
자살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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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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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내아이에게 나이와 이름 부여
한민족 인간존중사상 잘 보여줘
급속한 산업화로 배금주의 만연
배려와 생명존중 미풍양속 실종
국민 39분마다 1명씩 극단선택
자살률 ‘세계 1위’ 오명 꼬리표
자살 원인 정신적 문제가 최다
경쟁이 부른 우리 사회 현주소

한민족의 원초적인 사상이 된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민족의 생명존중, 생명외경사상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특별한 데가 있다. 일찍이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비롯해 고전문학, 종교, 그리고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존중사상이 짙게 배여 있다

장용학은 1955년 발표한 단편소설 요한시집에서 “나는 한 살 때에 났다. 나자마자 한 살이고 이름이 지어진 것이 닷새 후였으니 이 며칠 동안이 오직 나의 하나의 고향인지도 모른다. 세계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가령 이 며칠 사이에 죽었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되었을 것이다”고 했다.

이처럼 만 나이를 사용하는 서양과 달리 우리 민족은 엄마 뱃속의 태내 생명을 어엿한 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래서 나이뿐만 아니라 이름까지도 지어 배를 쓰다듬으며 배내 아이와 대화를 하고 심지어 태교를 했다. 태명(胎名)은 서양은 물론 심지어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오직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풍습이다.

널리 애송되는 시 ‘꽃’에서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꽃과 마찬가지로 배내 아이도 태명을 지어 불러주는 순간 하나의 작은 물질에서 진정한 인격적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소설과 시에는 인간존중사상이 짙게 배여 있다.

한민족 특유의 인간존중사상은 거듭된 망국(亡國)과 동난(同難)으로 민심이 피폐해지고 급속한 산업화로 배금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남을 배려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미풍양속은 호랑이 담배 필 적 일이 되고 말았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마구잡이로 흉기를 휘두르는 범죄 행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같은 ‘묻지마 범죄’는 올해 들어 더욱 극성을 부렸다. 심지어 이를 모방한 ‘살인예고’ 글이 하루가 멀다 하고 SNS를 장식해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위해(危害)하는 현상도 도를 넘고 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자영업을 중심으로 경제한파가 불어 닥치면서 생활고를 이유로 일가족이 한꺼번에 숨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14일 전북 익산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는 40대 부부가 자녀 2명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카페와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며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쳐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최근 사업 확장을 하면서 금전적 문제에 부닥치자 이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국민은 39분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자살률이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을 뿐만 아니라 강산이 두 번 바뀌도록 전 세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최근 질병관리청이 농촌진흥청, 통계청, 국민건강보험공단 등과 협업해 내놓은 제13차 국가손상종합통계에 따르면 2021년 손상을 경험한 사람은 약 296만 명으로 투입된 진료비만 5조3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된 손상환자는 55만 명이었으며 2만6147명이 손상으로 인해 사망했다.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 1위는 역시 자살이었다. 2021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연간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은 1만3352명으로 인구 10만 명 당 26명으로 조사됐다. 하루 평균 36.6명으로 39분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얘기다. OECD 국가와 비교해보면, 2019년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는 OECD 평균 8.7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0.1명으로 2.3배나 높다.

눈에 띄는 점은 여성 자살자가 남성에 비해 2배 많다는 것이다. 이는 자살의 원인으로 경제생활과 함께 정신적인 문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함을 시사한다. 실제로 2021년 경찰청 자살통계에 따르면, 자살의 원인으로 여성은 전 연령대에서 정신적 문제가 1위를 차지했으며, 남성은 정신적 문제와 경제가 엇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불행히도 한국의 자살률 1위 오명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살의 주요 원인인 우울증 환자가 매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우울증 진료환자 통계를 보면, 2021년 우울증 환자는 93만3481명으로 2018년(76만4861명)보다 35.1% 증가했다. 2017년에는 60대 환자가 전체의 18.7%(12만9330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2021년에는 20대 우울증 환자가 전체의 19.0%(17만7166명)로 가장 많았다. 이는 우울증으로 인한 청년 자살률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배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고 나이를 부여할 만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 우리가 오늘날 길거리에 ‘묻지마 살인’이 횡행하고 자살률 1위의 생명경시 사회에 살고 있다. 물질만능주의, 입시·취업경쟁이 부른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중병(重病)에 걸려 있다. 그 속에서 태어날 배내 아이들의 운명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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