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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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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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프랑스의 가장 큰 숙제는 이웃 독일의 ‘관리’였다. 프랑스는 처음에는 합스부르크의 경쟁자였고 다음으로 프로이센의 경쟁자였다. 독일과 보불전쟁, 1차 대전, 2차 대전을 치렀다. 지금은 우호관계이고 스트라스부르와 케엘 사이를 운행하는 전차가 그 상징이다. 두 도시 사이를 흐르는 라인강을 넘어 다닌다. 2017년부터다. 아무리 EU 내여도 전차가 국경을 넘어 다니는 곳은 달리 없다.

전차가 다니는 지역은 알자스-로렌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보여주듯이 프랑스와 독일이 수차례 주거니 받거니 한 경계 지역이다. 군사전략적 요충지이고 석탄과 철광석의 보고다. 독일이 점령하면 라인강이라는 장애물 없이 프랑스로 진입할 수 있고 프랑스가 점령하면 아르덴고원과 라인강을 두고 쉽게 방어할 수 있다. 마지노선의 핵심 지역이었다. 이제는 스트라스부르에 EU의 의회와 인권법원이 있다. 유럽의 평화와 통합을 상징한다. EU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 출발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석탄과 철강 때문에 전쟁을 하게될 가능성은 이제 없다.

프랑스는 지구상에서 보기 드물게 축복받은 땅이다. 남부와 북부 유럽 양쪽에 걸쳐있어 기후대가 다양하다. 산악지대는 남쪽과 서쪽 국경지대에 일부 있을 뿐인데 험준해서 보호 방벽이다. 북서쪽은 영국해협이고 서쪽은 대서양, 남쪽은 지중해가 막아준다. 프랑스 강들은 규모가 크고 항행에 매우 적합하다. 천혜의 교역로다. 그 강들 사이로 세계에서 가장 넓고 비옥한 평지들이 있고 프랑스는 손꼽히는 농업국이다. 수도 파리는 가장 이상적인 전략적 요충지이고 평지가 대부분인 국토 전체를 효과적으로 관장해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국민적 통합이 용이했다. 현대에는 우리 KTX에 기술을 준 TGV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랑스의 유일한 취약점이 북동쪽이다. 한때 프랑스 영토를 라인강 서쪽 전부로 설정하자는 생각이 나온 이유다. 북서쪽의 취약성 때문에 프랑스는 군사력보다는 외교에 치중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EU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된다. 북서쪽의 가장 부담스러운 이웃이었던 독일을 같은 돈을 쓰는 한 울타리에 포섭해 같이 잘 지내고 있다. 프랑스 역사에서 처음으로 독일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프랑스로서는 성공한 셈이다.

2차 대전 초반에 프랑스가 6주 만에 일찌감치 항복하자 독일은 나름 상당히 신사적으로 행동했다. 파리에 입성하는 대대적인 군사 퍼레이드를 펼쳤는데 독일군은 개선문 아치 바로 아래에 있는 1차 대전 등 전몰장병 묘를 피해 개선문을 우회 행진했다. 점령 후에도 평소 프랑스와 파리의 문화를 선망해 왔던 나치 장교들이 초기에는 시민들에게 매우 신사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1944년에 파리에서 퇴각하면서 파리 시가를 불태우고 에펠탑을 폭파하라는 야만적인 명령을 내렸다. 당시 파리 점령군 사령관은 폰 콜티츠 장군이었다. 대대로 군 장교를 배출한 프로이센 귀족 가문 출신인데 귀족 출신 장교들은 히틀러를 경멸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명령이 이행되지 않자 일주일 후에 ”파리를 불태웠나?(Brennt Paris?)“라고 하면서 격노했다. 1966년 작 영화의 제목이 여기서 온 것이다(Is Paris Burning?). 히틀러는 공군과 V2 로켓을 동원해 파리를 폭격하고 피해를 입혔지만 파리는 온전히 살아남았다.

폰 콜티츠 장군은 히틀러의 명령을 이행할 생각이 없었다. 히틀러가 이미 미쳤다고 판단했다. 파리를 온전히 내주는 대신 포로를 석방하기 위해 자유프랑스군과 협상을 했다. 사실 당시 상황은 독일군이 파리를 제대로 파괴할 여유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폰 콜티츠 장군은 ‘파리의 구원자’라고 불린다. 종전 후 영국과 미국에서 포로 생활을 한 후 1947년에 석방되었다. 1956년에 점령군 사령부로 쓰였던 모리스 호텔을 다시 방문해서 옛 직원들을 만나기도 했다. 1966년에 독일 바덴바덴에서 전쟁 후유증으로 사망했는데 장군의 장례식에는 프랑스군 고위 장교들도 참석했다. 우호적인 프랑스-독일 관계의 전조였겠다.

이제 유럽의 양대 강국 독일과 프랑스는 중세 이래 수없이 전쟁을 치른 불구대천의 원수지간 같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지정학적 긴장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 유럽에서 가장 사이가 좋은 두 나라가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사실과 특히 두 나라 모두 영국이 빠져나간 EU에 진심이라는 사실은 큰 다행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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