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불교)과 십자가(기독교)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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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불교)과 십자가(기독교)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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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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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붓다는 메시아와 覺者 
이 한 오 (성공회 신부)
 
 언젠가 스님들과 축구를 한 적이 있다. 종교 간 대화의 일환으로 주선된 경기였는데, 열심히 뛰고 즐겁게 먹고 마셨다. 매우 유쾌한 기억으로 남았을 뻔했던,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순간에 벌어졌다.
 내년에 다시 만나자며 인사하고 헤어지는데, 어느 목사님이 한마디 했다. “스님,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 개신교 연합팀 소속 목사님이 본색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 스님은 목사님의 진지한 얼굴을 확인하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후로 축구하자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축구를 하지 않으니까 대화도 중단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한번 사는 인생, 종교에 투신하여 개인적 성취욕을 넘어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보살이 되어 열반을 꿈꾸고 중생을 구제하려는 사람들과, 예수님 가르침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몸 바치겠다는 사람들이 만난 그 축구장은 얼마나 귀중한 자리인가. 그런데 어찌 “예수 믿고 가시라”며 판을 깰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때 경험 이후로 우리나라 그리스도교가 불교 교세보다 크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곤 한다. 축구공은 둥근데 종교는 모가 나 있었다.
 우리나라는 그리스도교와 불교라는 세계 종교가 막상막하의 세력으로 공존하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물리적으로만 공존할 뿐, 정신적으로는 무관심이나 무시 속에 병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불교를 이해하는 사람이 드문 것은 물론, 불자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다. 불신이나 혐오감을 갖지 않으면 다행일 만큼, 두 종교는 이 땅에서 상호무지와 무관심 속에 지내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불교와 함께 출발 지역을 넘어 세계화된 종교다. 두 종교는 다른 지역 종교들과 달리 계급과 신분 질서를 초월하여 누구나 구원(해탈 혹은 열반)을 받을 수 있다는 보편적 구원관과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부처님과 예수님 두 분 다 가정을 버리고 떠돌이 생활을 했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공동체 생활을 했다. 이분들은 독신, 무소유, 무욕의 삶을 살면서 열반과 `하느님나라’라는 초월적 실재와 가치를 추구했고, 절대적 평화주의자로서 증오와 폭력에 반대했으며, 무차별적 사랑과 용서를 설교하였다.
 부처님은 바라문교의 전통에서, 예수님은 유대교의 전통에 있었지만, 초월적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영적인 각성 운동을 일으켰다. 한 사람은 자연적 이름인 예수에서 구원자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도로 불리었고, 한 사람은 시다르마에서 `깨달은 자’라는 뜻의 붓다라는 칭호를 얻었다. 구원자(메시아), 각자(覺者)가 된 것이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심은 초월적 구원의 세계를 제시하고 인간 존재와 세계의 변화를 추구한 데 있다. 그것을 “열반”과 “하느님나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세계를 불교는 `초세간적’(lokottara) 그리스도교는 `종말적’(eschatalogical)이라고 부르는데, `종말’은 세상이 끝난다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 질서가 뒤집히고 새 질서, `새 하늘과 땅’이 열린다는 뜻이다.
 열반과 하느님 나라는 통상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초월적 실제이기 때문에 부처님과 예수님은 `영적 혁명’을 통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이 필요하다고 가르쳤고, 자기부정, 자기포기, 자기초월이라는 `죽음’의 과정을 거치는 사즉생의 세계와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생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생각에서 보살과 예수가 비교된다.
 물론 두 종교에는 차이도 많다. 신관이나 세계관이나 그에 따른 인간관의 차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상대방 언어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 차이라는 게 언어 표현 차이이지, 부처님과 예수님의 차이가 아닌 경우가 많다.
 어떤 종교평화모임에서 어떤 스님이 이렇게 기도했다. “불교가 그리스도교를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리스도교가 불교를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스님들은 부처님을 잘 알도록 도와주시고, 목사님과 신부님들은 예수님을 잘 알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허락해 주십시오.”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운 기도문이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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