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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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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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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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나라의 꽃들은 비교급의 기준이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불과 얼마전이다. 지금은 그보다 진화된 표현이  술술 흘러나온다. `꽃보다 납자’라느니 `꽃보다 돈’이라느니 하는 식이다. 내세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애꿎은 `꽃’을 내세워 키를 넘기려 든다. 아름답고 향기로워  찬탄과 사랑을 한몸에 받아온 꽃으로서는 이보다 더 참담한 일은 없을 것같다.
 신문 지면에 활짝 핀 꽃 사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아직 3월인데도 벚꽃까지 거리를 화사하게 만들고 있다. 봄의 전령사로 대접받던 개나리는 명함도 못내밀 신세가 돼버렸다. 꽃이 피어날  시기를 헷갈리고 있는 탓이다. 제철을 잊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을 `망녕든 꽃’이라고 부른다.
 이런 잣대라면 요즘 발길 닿는 곳마다 망녕든 꽃 천지다. 개나리,진달래,벚꽃이 모두 평년보다 열흘이나 앞당겨 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에는 제 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꽃으로서는 억울한 소리일 뿐이다. 삼월 날씨가 냉탕-온탕을 오락가락했을 뿐이니까.  춘삼월이라면서 일교차가 18도에 이르는데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는 꽃이 망녕든 것 아니냐는 항변이 나올 법도 하다.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은 온난화다. 3월에 초여름 날씨를 보였던 때가 지난주였다. 낮 최고 기온 의성 27.2도, 아침 최저 기온 영덕 16.5도였다. 1907년 기상관측이래 처음이라느니, 49년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느니 묵은 기록들을 들추기 바빴던 지난주였다. 이번주는 냉탕 순환기다. 꽃샘 추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금명간 풀린다지만 4월에 한여름 무더위 맛을 안보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꽃으로서는 제철 알리는 기능을 잃다시피 하고 비교나 당하고 있으니 굴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사태의 책임은 까맣게 잊고 꽃놀이 갈 생각에 들썩거리고 있다. 꽃의 마음은 사람 원망에 가득차있는데 사람들은 꽃나들이만 생각하고 있으니 못믿을 건 사람마음이다.
 김용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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