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언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어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고 T.S.엘리엇이 저 유명한 장시 `황무지’의 첫머리에서 읊었던 그 을씨년스러운 달이 사월이었다. 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신앙 부재와 정신적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였지만 어쩐지 올해 우리 영남권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어제오늘이다. `물건너간’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허탈감일 게다.
동남권신국제공항 건설을 공약하고 그 입지 선정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여오던 정부가 그예 지난달 30일을 기하여 `경제성 평가에서 점수가 미흡했다’며 없던 일로 결론을 내버렸다. 밀양입지를 줄기차게 주장했던 경북과 대구 울산 경남 4개 시도와 가덕도 앞바다를 메워 건설해야 한다고 우겼던 부산 양쪽 다 정부발표 후 그야말로 공황(恐慌)상태다. 하도 울분과 허탈감이 심하여 영남인들에게 올봄은 과연 춘래불사춘이요 가장 잔인한 계절이 아닌가 싶다. 해마다 봄꽃잔치를 가장 먼저 벌이게 해준 진해벚꽃조차도 오늘 군항제를 맞이한 가운데 전혀 필 낌새조차 보이지 않고 있어 더욱 을씨년스러워지는 4월 초하루다.
하지만 끝내 꽃은 피고야 것이다. 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도록 돼 있는 것이 봄꽃이다. 그렇듯이 지역민들의 염원이 담긴 동남권신공항이라면 언젠가는 성사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당장은 허망스럽더라도 울분만 토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처해나가는 것이 결국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길인지 1300만 영남권 주민들이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하리라.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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