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풍경속에 담긴 진실을 더듬다
  • 이경관기자
삶의 풍경속에 담긴 진실을 더듬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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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 이규리 지음 l 문학동네 l 116쪽 l 8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누가 아무리 우겨도 같은 풍경은 없고/이미 풍경은 너무 많으니/우리 풍경으로 남지 않기를// 또 옮기나보다/내가 머물지 않는데 나에게 무엇이 머물겠는지/다섯 시간을 건너와 20분을 만나거나, 전생을 건너와 파란을 맞는대도/ 우리가 만나는 건 순간일 뿐// 오래지 않아서/가져갈 수 없어서/얼마나 다행인지// 스쳐가고 오는 동안/처음이고 나중인 풍경/너, 아니었는지”(`풍경’ 중에서)
 우리 모두는 한낱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이규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는 담백함을 완성하는 과정을 독특한 미학으로 담은 시 58편이 묶여 있다. 시집 `뒷모습’ 이후 8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은 8년이라는 세월동안 시인을 스친 생과 풍경을 오롯이 담겨 있다.
 “그가 커피숍에 들어섰을 때/재킷 뒤에 세탁소 꼬리표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여기까지 오는 동안/왜 아무도 말해주지 못했을까/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애써 준비한 말 대신 튀어나온 엉뚱한 말처럼/저꼬리표 탯줄인지 모른다/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상견례하는 자리에서/한쪽 인조 속눈썹이 떨어져나간 것도 모르고/한껏 고요히 앉아 있던 일/각기 지닌 삶이 너무 진지해서/그 일 누구도 말해주지 못했을 것이다/(…)/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있는 것이다”(`저, 저, 하는 사이에’ 중에서)
 시인은 떼지 못한 세탁소 꼬리표, 떨어진 인조 속눈썹 등 일상의 소재를 깊은 사유를 통해 `시’로 탄생시킨다.
 시 `저, 저, 하는 사이에’ 속 시인이 포착한 삶의 순간은 씁쓸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말의 무력함을 고백함과 동시에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삶의 순간이 있음을 인정한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슬픔을 더욱 짙어지게 하는 시인의 담담한 현실주의는 아릿하다.

 “창이 큰 집에 살면서 되려 창을 가리게 되었다/누가 이렇게 커다란 창을 냈을까/이건 너무 큰 그리움이야// 창이 건물의 꽃이라지만/나는 누추하여 나를 넓히는 대신/창을 줄이기로 한다// 간절히 닿고 싶었던 건 어둠이었을까/모순의 창/제 안에 하루에도 여러 번 저를 닫아거는 명암이 있어// 어느 날은 그 창으로 꽃을 보았다 말하겠지/어느 날은 그 창으로 비참을 보았다 말하겠지// 우리가 보려는 건/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인데,// 왜 창 앞에 자주 저를 세웠을까/돌아보면 거기 누군가의 눈이 있었다고 말해도 될까/누군가는 나를 다 보았겠지만/해부한 개구리처럼 내 속을 다 보았겠지만/창이 왜 낮엔 밖을 보여주고 밤엔 자신을 보게 하는지// 그리운 것들은 다 죽었는데/누가 이렇게 커다란 창을 냈을까”(`커다란 창’ 전문)
 삶은 모순의 연속이다. 시인은 모순 가득한 일상에서 `창’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적 화자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반지하의 작은 창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지상의 큰 창을 꿈꾼다. 그러나 정작 큰 창이 있는 아파트에 올랐을 때, 내리쬐는 햇살을 가리기 위해 커튼을 찾아 친다. 모순적 삶이, 그 삶을 모른척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간사함이 서글프다.
 시인의 사유와 그 사유를 온전히 담아내는 단어와 행간의 쉼은 시적 화자의 내면을 넘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시집의 해설을 쓴 박상수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에 대해 “진실을 알고 있지만 쉽사리 절망하지도, 쉽사리 초월하지 않으면서 사려 깊은 담담함으로 일상의 가치를 수긍하는 사람의 사랑스러움.”이라고 썼다.
 시를 읽은 후, 창 밖을 본다. 익숙하던 풍경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 너와 나 우리가 풍경이고 또 그 풍경의 주인공인 것을. 생을 향한 우리의 최선은 풍경이 되기 위한 우리의 발걸음일 것이다.
 이규리. 문학동네. 116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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