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누가 아무리 우겨도 같은 풍경은 없고/이미 풍경은 너무 많으니/우리 풍경으로 남지 않기를// 또 옮기나보다/내가 머물지 않는데 나에게 무엇이 머물겠는지/다섯 시간을 건너와 20분을 만나거나, 전생을 건너와 파란을 맞는대도/ 우리가 만나는 건 순간일 뿐// 오래지 않아서/가져갈 수 없어서/얼마나 다행인지// 스쳐가고 오는 동안/처음이고 나중인 풍경/너, 아니었는지”(`풍경’ 중에서)
우리 모두는 한낱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이규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에는 담백함을 완성하는 과정을 독특한 미학으로 담은 시 58편이 묶여 있다. 시집 `뒷모습’ 이후 8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은 8년이라는 세월동안 시인을 스친 생과 풍경을 오롯이 담겨 있다.
“그가 커피숍에 들어섰을 때/재킷 뒤에 세탁소 꼬리표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여기까지 오는 동안/왜 아무도 말해주지 못했을까/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애써 준비한 말 대신 튀어나온 엉뚱한 말처럼/저꼬리표 탯줄인지 모른다/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상견례하는 자리에서/한쪽 인조 속눈썹이 떨어져나간 것도 모르고/한껏 고요히 앉아 있던 일/각기 지닌 삶이 너무 진지해서/그 일 누구도 말해주지 못했을 것이다/(…)/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있는 것이다”(`저, 저, 하는 사이에’ 중에서)
시인은 떼지 못한 세탁소 꼬리표, 떨어진 인조 속눈썹 등 일상의 소재를 깊은 사유를 통해 `시’로 탄생시킨다.
시 `저, 저, 하는 사이에’ 속 시인이 포착한 삶의 순간은 씁쓸하다. 이 시에서 시인은 말의 무력함을 고백함과 동시에 그저 바라보아야만 하는 삶의 순간이 있음을 인정한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슬픔을 더욱 짙어지게 하는 시인의 담담한 현실주의는 아릿하다.
삶은 모순의 연속이다. 시인은 모순 가득한 일상에서 `창’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적 화자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반지하의 작은 창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지상의 큰 창을 꿈꾼다. 그러나 정작 큰 창이 있는 아파트에 올랐을 때, 내리쬐는 햇살을 가리기 위해 커튼을 찾아 친다. 모순적 삶이, 그 삶을 모른척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간사함이 서글프다.
시인의 사유와 그 사유를 온전히 담아내는 단어와 행간의 쉼은 시적 화자의 내면을 넘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시집의 해설을 쓴 박상수 문학평론가는 이 시집에 대해 “진실을 알고 있지만 쉽사리 절망하지도, 쉽사리 초월하지 않으면서 사려 깊은 담담함으로 일상의 가치를 수긍하는 사람의 사랑스러움.”이라고 썼다.
시를 읽은 후, 창 밖을 본다. 익숙하던 풍경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 너와 나 우리가 풍경이고 또 그 풍경의 주인공인 것을. 생을 향한 우리의 최선은 풍경이 되기 위한 우리의 발걸음일 것이다.
이규리. 문학동네. 116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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