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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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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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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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일 동국대 대학원 객원교수
[경북도민일보]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일어난 조정의 사건들과 백성들이 당한 참혹한 참상을 서애 유성룡 선생이 기록한 책이다. 비록 정사(正史)는 아니지만 정사 이상의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객관적 사실과 함께 기록자의 진솔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징비록은 ‘징비록’의 기록을 근거로 해서 만들어진 사극(史劇)이다.
 서애 선생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삼정승을 두루 거쳤으며 이조와 예조, 병조판서까지 겸직을 했으니 벼슬로 치면 누구도 당해 낼 수 없는 관록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벼슬도 태평성대의 벼슬이 벼슬이지 종묘사직이 위태로운 난세의 벼슬은 오히려 한직의 말단 벼슬보다 더 나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충신이라면 벼슬이 크면 클수록 그 중압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더하여 당파싸움이 극심한 시기였으니 살얼음 위를 걸어가듯이 살아도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운 때였다. 서애 선생도 결국은 파직까지 당하게 되는데, 예나 지금이나 충신의 길은 험난한 것인가 보다.
 당쟁의 갈등으로 인해 청빈하게 살았던 서애 선생도 반대파의 모함을 받게 되고 우의정이란 벼슬이 무색하게 사헌부 관리들에 의해 가택수색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 잡듯이 뒤져도 값진 물건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고이 지은 무명옷만 한 벌 찾아낸다. 그것조차 이순신의 모친이 아들을 구해준데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손수지어 보낸 옷으로 밝혀지게 되니 그를 모함했던 반대파 사람들조차 서애 선생의 청빈한 삶에 놀라게 된다.
 당쟁으로 국력이 분산되니 왜군의 침략에 대비할 수가 없었고 결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오고 조정에서 알게 된 것은 4월 17일이다. 요격에 나선 이일 장군은 상주에서 패하고 믿었던 신립마저 충주에서 패하게 된다. 이 패보가 조정에 날아든 것은 4월 29일. 선조는 다음 날 새벽에 피난길에 오르고, 그날의 일을 실록(實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30일(기미), 왕, 비, 세자는 도성을 버리고 서행하다. 위병과 종들은 모두 도망쳐 버리고 궁문은 잠그지도 않았고 금루는 경(시간)을 알리지 않았다. 여시(女侍) 수십 인이 걸어서 뒤따르고 지척을 가리지 못하는 어둠 속에 도승지 이항복이 촛불을 밝혀 길을 이끌다.” 이 대목을 읽노라면 처연한 심정이 든다.
 고시니 유끼나가(小西行長)가 활짝 열린 동대문으로 쳐들어 온 것은 5월 2일이다. 그들이 오기 전에 유민들에 의해 이미 한양은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듬해 4월 20일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입성하고 하루 전날 왜군은 한양에서 철수하게 된다. 왜군이 점령했던 1년 동안의 참상이 지봉유설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쌀이 귀해지니 굶주린 백성들이 백주에 서로 죽여서 서로 먹게 되었고, 게다가 악질(惡疾)이 유행하여 도로엔 죽은 사람이 겹겹이 쌓여있고, 수구문 밖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그 높이가 성보다 높았다.”
 ‘일본역사’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이 때 왜병들이 베어간 조선인의 코의 수는 2만 9251개이다.”나라 잃은 백성의 치욕이자 아픔이다.
 이러한 참극에 미리 대비하자고 쓴 책이 징비록이지만 당쟁에 밀려 그 책은 조정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고 얼마 뒤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또 당하게 된다. 인조 임금은 남한산성에서 청태종에게 신하가 되겠다는 약조를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큰 절을 올리게 되는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을 겪는다.
 역사는 과거의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의 가르침이다. 작금의 국제 정세를 보면 역사왜곡 문제도 심각하고, 영토분쟁은 더욱 살벌하다. 경제문제는 총성이 없을 뿐 이미 전쟁이 되어버렸다. 복지를 자랑하던 일부 유럽 선진국들은 연금조차 지급하지 못할 파탄을 맞고 있다. 이러한 냉혹한 현실 앞에서 국민 모두가 스스로 징비하지 않는다면 임진왜란 같은 환란은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도 있으며, 특히 경제위기는 과거처럼 천천히 오는 것이 아니라 급속하게 빨리 닥칠 수도 있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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