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가족’의 왁자지껄 생존기… 우리시대 초상
  • 이경관기자
‘알바 가족’의 왁자지껄 생존기… 우리시대 초상
  • 이경관기자
  • 승인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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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자본주의 시대 속 비틀대는 한 가족 아픔 발랄하고 경쾌하게 풀어

 

알바패밀리
고은규 지음 l 작가정신 l 230쪽 l 1만2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바퀴벌레야, 내 인생은 왜 이런 거니?”(64쪽)
 소설가 황석영 선생은 소설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를 반영하는 것. 그것은 문학이 가진 숙명이다.
 장편소설 ‘트렁커’와 ‘데스케어 주식회사’로 이 시대 문단의 이야기꾼으로 자리 잡은 작가 고은규. 그가 최근 세 번째 장편소설 ‘알바패밀리’를 펴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상품처럼 소비되는 ‘소비 자본주의 시대’ 속 비틀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몰락한 자영업자, 엄마는 마트계산원, 대학생인 ‘로민’과 ‘로라’는 학자금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 중이다.
 “호두처럼 단단했던 아버지가 이제는 바스라지기 일보 직전으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의 자존감은 이미 분쇄기 안의 가루처럼 돼 버렸는지 모른다.”(180쪽)
 호두처럼 단단한 가구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호두가구’를 오픈한 아버지는 홈쇼핑으로 판매한 책상이 대부분 반품으로 돌아오자 부도 위기에 처했다. 아버지는 밀린 직원의 월급을 주기 위해 인간 간판 아르바이트를 뛰며 막막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엄마는 사라지고 마트의 친절 마크가 방긋거린다. 누굴까. 엄마의 표정을 가져가 버린 사람은.”(95쪽)

 수도·전기세가 밀리기 시작하면서 끊길 위험에 처하자 마트 계산원에 나선 엄마. ‘로라’는 속옷 교환을 위해 찾은 마트에서 무례하게 구는 손님 앞에서도 참고 일하는 엄마를 마주한다. ‘통쾌하게 한방 날려라’는 로라의 바람과는 반대로 엄마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한다.
 “바람 속에 악취가 숨어 있다. 제발, 누가 저 지하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거대한 펌프를 꺼주면 안 될까. 내가, 아니 엄마와 아빠와 로민이, 우리 가족 모두가 지하로 내려가서 힘차게 꺼짐 버튼을 누르면 안 될까. 그렇다면 내 몸 속 정체불명의 자명종 버튼도 덩달아 꺼질 수 있을 텐데…….”(165쪽)
 이 집안의 막내이자 철부지 딸인 ‘로라’가 던지는 독백은 가슴을 헛헛하게 한다. 대학생인 로민과 로라는 이 시대 청년들을 대변한다.
 소설 속 인물 중에서 가장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로라. 그녀는 리뷰사이트에서 리뷰왕으로 자리잡으며 용돈을 벌었으며 보라보라스포츠센터에서 수질관리요원으로 R컬렉션에서 판매원으로, 편의점 알바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로라의 다양한 아르바이트들은 각 장 속에서 때로는 중심 사건으로 때로는 양념과 같은 역할을 하며 소설을 이끈다.
 고 작가는 암울한 풍경 속에서 휘청이듯 살아가는 가족들의 아픔을 발랄하고 경쾌하게 풀어낸다. ‘반품왕’, ‘보라보라스포츠센터’, ‘버몬트 씨 옷 벗기기’ 등 각 장에서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 이야기들은 독립적인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영세한 자영업자인 아버지는 영악한 소비자들 때문에 가구공장을 닫는다. 리뷰만 쓰고 상품은 도로 돌려보내던 로라는 ‘소비자보호법’에 역습을 당한다.
 고 작가는 우리 모두 영세한 생산자인 동시에 영악한 소비자가 된 이 시대를, 아버지와 딸 로라의 모습을 대비해, 통렬하게 비웃는다.
 “밤낮없이 일을 하다보면 우리 가족은 결국 부자가 되고 말 거야. 정말 엄청난 부자 말이야. 밥을 굶지 않고 관리비 같은 건 밀리지도 않는 부자 말이야. 열심히 일하다보면 희망찬 새날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160쪽)
 이 소설의 해설을 쓴 전성욱 평론가는 “일가족이 모두 시간제 알바로 연명하는 삶이 좀 과장된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삶은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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