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환/ 언론인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전격 탈당했다. 대선후보 경선을 염두에 둔 박 의원이 후보경선 규칙 개혁을 요구했지만 이회창 총재가 거부했다는 이유에서다. 박 의원은 당시 △민심 대 당심 반영비율 75% 대 25%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요구했다. 박 의원이 그때 탈당해 만든 게 `미래연합’이다. 현역의원 한사람도 없는 `나홀로 탈당’이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 전 한나라당 대표 사이에 벌어진 싸움도 정확히 대선후보 경선룰 때문이다. 그런데 5년만에 박 전 대표 입장이 180도 뒤집혔다. 민심과 당심 비율을 50 대 50으로 당초안 보다 확대하자는 이 전 시장측 요구를 `걸레’라는 식으로 일축한 것이다. 강재섭 대표가 민심 반영 비율을 `약간’ 반영하는 중재안을 내놓자 아예 아우성이다. 정치란 “다 그런 것”으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다.
아이러니는 또 있다.
4·25 재·보선 참패 직후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 전 대표 두 사람은 패배 책임소재를 놓고 한바탕했다.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 측의 `합동유세’ 제안을 거부하고 `따로국밥식’ 지원유세를 벌인 탓에 “오만하다”는 지탄을 받았다는 게 `박 전 대표 책임론’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억울할지 모른다. 대중 속에서 유독 잘 나가는 박 전 대표로서는 대전 서을 국회의원 보선만 이기면 이 전 시장과의 지지율 역전이 가능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전 시장에게 망석을 깔아주겠는가.
비난이 쏟아지자 박 전 대표는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행정수도 이전을 막고 싶다’고 한 사람과 유세를 함께하면 표가 쏟아지느냐”는 식으로 대전 선거 패배 원인을 이 전 시장에게 쏟아 부었다. `서리’가 주렁 주렁 달린 얼굴로 말했다. 입이 거친 전여옥 의원까지 박 전 대표의 찬바람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을 정도다. 놀라지 않았다면 박 캠프 참모들 뿐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박 전 대표는 표독스러웠다. 아마 이 전 시장의 등을 떠밀어 당밖으로 내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박 전 대표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이회창 후보를 위해 전국을 돌았다. 입당과 동시에 받은 몇 억 원인가가 문제가 됐지만 이내 덮어졌다. 박 전 대표측은 2002년 한나라당 탈당 이후 겪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떠올리는지 모른다. 그 경험을 이 전 시장에게도 주고 싶은 것일까?
강 대표도 알다가 모를 사람이다.
강 대표는 누가봐도 친 박근혜 전 대표 사람이다. 적어도 며칠 전까진 그랬다. 작년 대표경선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진영의 이재오 의원이 거의 대표가 될뻔했지만 이를 뒤집고 강 대표를 있게 한 건 전적으로 박 전 대표측 작용이었다. 4·25 재·보선 참패 이후 이 전 시장측이 이재오 최고위원을 앞세워 강 대표 체제를 뒤흔든 것은 친 박인 강 대표를 무너트려 박에게 유리한 당내 구도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다. 재·보선 전문당인 한나라당의 4·25 재·보선 참패에 대한 문책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거센 반발로 강 대표 낙마 시도는 실패했다. 박 전 대표 진영은 환호작약했다. 불과 1주일여 전이다.
상황은 반전됐다. 이 전 시장측이 끈질기게 요구한 대선후보 경선룰과 관련해 강 대표가 박 전 대표 입장을 깔아 뭉개고 이 전 시장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선후보 선거인단 확대 및 전국 동시선거, 여론조사 반영 방식 일부 조정이 골자다. `민심’ 반영비율을 높이는 게 골자다. 이 전 시장이 중재안이 나온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수용키로한 반면 박 전 대표 측에서는 “강 대표가 배신했다”는 비명이 흘러 나왔다. 한쪽이 즐거우면 다른 한쪽은 고통스러운 법이다. 이 또한 아이러니다.
실제로 강 대표 중재안을 시뮬레이션에 걸어 본 결과도 이 전시장이 유리하다. 박 전 대표도 “다 어그러졌다. 기가 막히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1주일 상관으로 강 대표는 `친 박’에서`친 이’로 딱지가 바뀌었다. “강 대표가 이 전 시장측에 포섭됐다”는 극언도 쏟아졌다.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집단인지 모른다. 아이러니가 아이러니를 낳는 한나라당의 아수라장은 국민들의 등을 떠밀고 있음을 이-박 두 사람 모두 알아야한다.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