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보물섬’의 저자 스티븐슨은 유달리 어린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날 새로 친구가 된 소녀의 하소연을 들었다. 11 살짜리 소녀는 생일을 두번 밖에 경험하지 못했다고 했다. 생일이 2월29일인 때문이었다. 그는 즉석에서 증서 한 장을 꾸몄다. 자신은 이제 생일이 필요없는 나이가 됐으므로 자신의 생일 2월 3일을 소녀가 희망하는 시간까지 양도한다는 내용이었다.
작가 안수길의 ‘제3인간형’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 우리 어머니 날 배기 전에 유산(流産)�을 했대요. 사 개월 만이었다는데, 유산 후 두 달만에 나를 뱄다잖아요. 계산해 보세요.언니가 될지 오빠가 될지 모르는 아기가 유산않구 그대로 났더라면 난 이 세상 구경 못 하는 게 아녜요.”
이 의원은 “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성별(性別)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출생신고를 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뱃속의 아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출생신고부터 해놓고 보는 부모가 어디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나이가 애매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집에서 세는 나이 다르고, 호적 나이 다르며, 양력·음력나이가 다르다. 출생후 2년쯤 지나 신고를 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탄생 몇 달 전에 출생신고부터 해놓은 사람은 성별을 꿰는 신통력이라도 지닌 것일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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