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의 흔적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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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의 흔적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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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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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경북도민일보]  구 소련이 무너질 무렵 러시아 북서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 한 적이 있었다. 이곳은 오래동안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러시아 역사의 중심지였다. 이 도시는 1917년 2월 혁명의 현장이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포위공격을 끝까지 버텨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도시의 건축 양식이었다. 우선 오래된 건축들이 역사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필자가 놀란 것은 같은 모습의 건축이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건축이 제각각 다양하게 고풍스러운 도시를 형성 하고 있었다. 거리의 모습이나 건축양식 등이 여행객의 발목을 잡을 정도로 고풍스러웠다.
 필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보면서 오랜 시간의 흔적은 고귀하다는 것과 오랜 역사의 흔적은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
 무심코 지나가 버리는 시간은 그대로 사라질 것 같지만, 어디엔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긴긴 역사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가는 역사와 문화와 정신세계는 반드시 다음세대에 남겨야 한다. 
 위대한 삶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듯 위대한 역사와 문화는 오랜 시간의 흔적들로 만들어진다. 올림픽 금메달 선수들은 오랜 훈련과 인고의 고통을 견디어야 한다. 요리연구가의 맛의 비법을 체득하는 것도 오랜 시간의 숙련이 있어야 한다. 유명한 명의가 인체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도 오랜 시간이 흘러가야 한다.
 어느 직업이든 숙련의 단계는 간단하지 않다. 소중하고 귀중한 것일수록 체득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고 그 숨겨진 비밀이 내 것이 되려면 시간과 시간이 겹치고 또 겹쳐야 된다.

 우리는 소중한 것일수록 성급함을 거부해야 한다. 화려한 불꽃 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소멸된다. 한순간 반짝하는 것들은 공허함과 허무를 안긴다. 성급함은 실수를 일으키고 결국 오류와 미숙함을 만든다.
 현대는 초고속 시대다. 과거에 몇 년 걸리던 것들이 이제는 며칠 만에 끝나기도 한다. 한국인의 대명사는 ‘빨리 빨리’ 그리고 ‘맵고 화끈한’ 것을 좋아한다. 기다림은 또 하나의 고통이다. 기다림은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시간의 단축에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높은 산을 케이블카로 올라가면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올라 갈수 있다. 그렇게 올라가면 쉽고 편리하긴 하지만 놓치는 것이 더 많다. 우선 산에 피어나는 야생초나 들꽃을 보고 함께 걷는 동요과 담소를 나누며, 틈틈이 쉬어가면서 산들바람을 느끼고 숲을 보고 하늘을 보면서 여러가지 풀벌레 소리와 새 소리를 듣을 수 있는 것은 산을 천천히 오를 때만 누리는 행복이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질병은 대개 조급증에서 온다. 성급함은 우울증을 낳고 후유증을 낳는다. 체중을 빠르게 줄인 사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인생은 시간의 축적의 산물이다. 보일러도 시간이 가야 따뜻해진다. 밥은 뜸을 들여야 한다. 빵은 밀가루의 숙성을 거쳐야 한다. 고귀한 도자기일수록 오랜 숙련과정과 오랜 세월을 거쳐야 한다.
 고생 없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벼락부자는 벼락을 맞을 확률만큼 어렵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시간의 숙성이나 과정 없이 이룬 것들은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허영에 차 있다. 역사는 시간을 잊은 곳에서 꽃이 핀다. 시간을 잊은 듯 인고의 시간을 견디다 보면 어느 듯 장인의 경지에 들어선다. 세월을 잊은 듯 자신의 일에 몰두하다 보면 무엇인가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무엇보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야 한다.
 오래된 친구가 편하다. 오랜 시간을 통해 빚어진 것이 아름답다. 좋은 것은 시간의 작품들이다. 깊은 사랑도 오랜 시간이 깊이 스며들 때 이루어진다. 사랑도 조급하면 깨어진다. 사랑도 천천히 해야 한다. 세상에 감동을 주는 것들은 모두 시간의 흔적이고 세월의 흔적이다.
 오랜 시간의 흔적은 고귀하기에 오늘은 또 하나의 선물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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