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를 아십니까
  • 경북도민일보
홍대입구를 아십니까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20.0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대입구는 우리나라의 젊은 문화를 대표하는 장소이다. 주말이면 한 걸음 옮기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젊은 인파가 몰리곤 한다.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젊은 감각에 맞는 독특한 상점들이 눈길을 끌고, 독특한 카페와 디자인 숍이 즐비하다. 전국의 맛집들이 마지막으로 도전하는 최후의 승부처이기도 하다. 개방된 장소들도 다 재미가 있다. 철도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광장에는 불과 십여 미터 마다 한 팀씩 자리 잡고 거리공연으로 군중을 모으고 있고, 작은 공원도 플리마켓과 축제로 늘 활기가 있다. 무엇보다도 볼만한 것은 클럽들이 모여 있는 거리이다. 젊은 활기를 한번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클럽데이의 홍대입구를 가봐야 한다. 발을 동동 구르며 입장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거리를 빼곡히 채우면서, 그야 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서울 8경(?)’이 있다면 그 중 하나로 꼽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홍대입구가 원래부터 이렇게 활발한 곳은 아니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학가 치고는 차라리 한산한 곳이었다. 대학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미술학원들과 화방이 드문드문 서 있어, 그저 미술학도의 거리 정도로 여겨질 뿐이었다. 대로변을 벗어나면 오래되었지만 큼직한 주택들이 있었고, 그에 딸린 지하실은 예술가들의 작업장으로 쓰이곤 했다. 지금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것은 물론, 상업지로서의 성격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이 지역은 인근의 신촌지역과는 달리 비교적 싸게 작업장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자연히 젊고 창조적인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 들게 되고, 그러면서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간다. 허름하지만 자유로운 홍대입구의 지하실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정신적 고향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90년대 후반에 나타난 소위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아직 조용하던 이곳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다. 제도권을 벗어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언더그라운드 예술계에 있어 홍대입구는 둘도 없는 행선지였다. 큼직한 지하실을 싼값에 빌려 마음껏 소리를 높여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점차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용광로가 되어갔고, 자연히 이를 흠모하는 청년대학생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기 시작한다. 예술문화를 좋아하는 청년대학생들이 모이다보면 음주가무는 필수일 수밖에. 지하실의 작업장은 점차 작은 공연장의 성격을 띠게 되고, 아무나 와서 놀고 갈 수 있는 클럽들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제도권 밖의 문화는 언젠가는 불의 시험을 받기 마련이다. 2000년대에 들어선 홍대입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이 몰리는 명소가 되고나면 ‘큰손’들의 투자가 시작되고, 올라가는 임대료 때문에 정작 지역을 형성한 주체들은 몰려나곤 한다. 이른바 ‘둥지 내몰림’ 현상이다. 가난한 ‘창조계층’들이 만들어낸 거리를 문화에는 관심도 없는 자본가들이 앗아가 버리는, 아주 몹쓸 현상이다. 대로변은 모두 큼직한 건물로 변해갔고, 작업장을 대 주던 뒷골목 단독주택들도 모두 상업 건물로 바뀌어갔다. 언더그라운드 공연장들은 이제는 입장료를 주고 들어가야 하는 기업형 클럽으로 변해버린다. 둥지 내몰림은 오랫동안 형성된 독특한 지역문화를 이렇게 소멸시켜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특성 없는 상권으로 바꾸곤 한다.

하지만 홍대입구는 조금 달랐다. 둥지에서 내몰린 새들이 도피할 수 있는 또 다른 나무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동쪽 합정, 상수 부근의 미로와 같은 작은 골목길들이 바로 이런 도피처의 역할을 했다. 둥지에서 쫓겨나 창조계층은 자본화된 대로변을 피해 옆 골목으로, 다시 옆 골목으로 계속 피난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전의 모습은 아쉽게도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매력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이겠다. 약육강식 원리가 지배하는 상업구조 속에서 문화예술은 취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살아남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겠지만, 인위적 정책이나 사업이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역문화, 지역활성화와 관련된 사업에 참여하다보면 지역에 ‘홍대입구 같은 곳을 만들자’는 표현을 종종 듣게 된다. 수십만 대학생들이 찾는 홍대입구를 너무 쉽게 표본으로 삼는 것도 문제이지만, 독특한 지역문화가 형성되는 그 길고도 복잡하며 예민한 과정을 너무 간단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다른 사업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지역문화는 단기적이고 인위적인 정책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 급하다고 해서 유명한 지역을 모방해 바로 열매를 거두겠다는 접근은 곤란하다. 씨앗을 뿌리고 나면 은근한 기다림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것처럼, 지역문화사업도 그렇게 진행되었으면 한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 공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