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를 시험하는 악마이자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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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우리를 시험하는 악마이자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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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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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내려오는 눈송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른 아침 좌정하고 나를 찾아온 눈을 봤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나를 차분하게 만든다. 이 ‘고요’가 얼마나 행복한지!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일, 그래서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고요를 통해 발견한 간절한 임무가 아니라면,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정성이 없다면, 성공을 보장하는 신명이 나지 않기 때문에 그 일은 부실하고 실패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이며 권력자다. 타인이 시켜서 해야 하는 일, 혹은 자신이 열중하고 있는 일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없는 사람이 그 일의 노예다. 우리가 아는 리더들은 겉으로는 자신의 삶을 장악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주변 사람들과 사회가 그에게 부과한 일을, 마치 영원히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다. 부질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생을 마치는 졸장부다.

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이 내게 묻는다. “네가 오늘 수행하려는 일이 당신에게 감동적이며 네가 가고 싶은 그 목적지에 맞닿아 있는가.” 나를 내가 가야 할 길에서 이탈하라고 부추기는 유혹들이 있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필요 이상의 부, 권력 그리고 명성이다. 고요를 통해 제어되지 않는 야망은 그 사람의 개선을 방해하고 진부한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괴물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겁하게, 혹은 의기소침해 걷지 않는다. 그는 그날 자신에게 할당된 운을 이기적인 인간처럼 숭배하지도, 겁쟁이처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인간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그것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따라 행운이 되기도 하고 불운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항상 중립적이다. 이 중립적이며 이중적인 의미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고대 그리스어가 있다. ‘다이몬(daimon)이다. 다이몬은 후에 영어단어에 악마를 의미하는 ’데몬‘(demon)이 됐다. 그러나 다이몬은 우리가 번역하기에 서로 다른 상극의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는 형용 모순적인 낱말이다. 다이몬은 악마이면서 동시에 천사란 의미다.

우리는 세상을 항상 대립적인 이항을 지닌 대결로 본다. 그것이 세상을 이해하기 쉬운 도구이기 때문이다. 나-너, 선-악, 남-여, 위-아래, 흑-백, 보수-진보, 내 편-네 편. 인간은 자신이 우연히 속한 집단의 이념을 흔히 ’선‘으로 여기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거나 익숙하지 않은 불편을 ’악‘으로 폄훼한다. 인간이 이 이원론적인 구분을 초월해 양편을 모두 이해하려고 공부하지 않는 한 그는 자가당착적인 무식이 된다. 다이몬이란 단어는 전적으로 온전히 악마이면서 온전히 천사이지만, 동시에 악마-천사라는 이분법의 구분을 넘어서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개념이다.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히브리 단어 ’사탄‘(satan)은 원래 악마가 아니라 천사였다. 사탄은 히브리어 표현을 빌리자면 ’브네 엘로힘‘, 즉 ’신의 아들들‘의 한 명이었다. 사탄이 하는 일은 법정의 검사와 같이 신이 특별히 선택한 인물이 과연 괜찮은지를 시험하는 존재다. 성서에서 사탄에 의해 시험을 받는 자는 보통 인간이 아니라 위대한 인물이다. 아브라함, 욥 그리고 예수까지 세 명이 신으로부터 시험을 받았다. 그러니 사탄은 신이 선택한 인물 됨됨이를 보는 천사다.


다이몬은 이원론이 인류를 지배하기 전 인류의 원초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다이몬은 악마도 되고 천사도 되며, 악마와 천사를 초월하는 큰 그릇이다. 다이몬은 세상을 둘로 보는 나를 깨우치기 위해서, 그 생경한 의미의 경계 위에서 나를 응시한다. 우주와 나 삶에 불현듯 일어나는 현상들은 서로 대립하는 ’둘‘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하나‘인가?

다이몬은 신적인 존재로, 자신을 수련해 신적인 삶을 살려는 자를 심판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다. 그는 마치 승단 심사의 태권도 사범처럼 수련생의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해 평가할 것이다.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수련생은 사범의 부당한 지적이나 과도한 혹평을 견뎌야 한다. 태권사범은 그의 조그만 실수도 지적하는 악마와 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수련자를 신적인 경지로 끌어올리는 천사이기도 하다. 태권사범은 악마이자 천사다.

다이몬은 수련자 스스로 완벽한 자가 되도록 수련시키는 ’도우미‘다. 다이몬은 인간에게 혹독한 심판을 통해 인간 각자가 지닌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도록 돕는다. 개개인이 지닌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이 ’천재성‘이다. 천재는 자신이 즐거워하고 몰입할 수 있는, 자신만의 구별된 한 가지를 매일 완벽하게 갈고닦는 사람이다. 천재는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더 나은 자신을 상상하고 그 숭고한 자신과 경쟁하는 자다.

다이몬은 나를 억세게 밀어붙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길 요구한다. 다이몬은 내가 지금 여기서 조각해야 할 ’인생‘이란 조각품을 만들기 위한 정과 망치다. 나는 다이몬과의 조우를 통해 땅에 떨어진 내 공을 다시 집어 하늘로 높이 던지려 한다. 그러기에 다이몬은 천사이자 악마이며, 천재성이자 운명이다. 다이몬은 원래 인도-유럽어 어근 ’데‘(deh₂-)와 명사형 접미사 ’몬‘(-mon)의 합성어다. ’데‘는 ’혼돈을 우주의 질서에 맞게 구분하고 재단하다‘라는 뜻이다. 이 어근의 의미를 살려 해석하면 다이몬은 ’나의 운을 재단해 행운으로 만들기도 하고 불운으로 만들기도 하는 가치중립적인 존재‘다.

코로나19는 인류의 삶을 정지시켰다. 가공할 만한 과학기술이 인간의 이기심과 결탁해 멈출 줄 모르는 폭주 기관차가 된 인류를 마침내 멈춰 세운 것이다. 이 감염병은 인류에게 다이몬이다. 악마와 같은 이 전염병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고, 우리의 능력을 측정하고 수련시키는 천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코로나19를 불운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행운으로 만들 것인가?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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