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를 훔치는 므라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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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를 훔치는 므라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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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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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제이슨 므라즈의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를 들으며



We sing.

한 시절 우리는 제이슨 므라즈 노래를 다 함께 불렀다. 우리가 누구냐고. 바로 제이슨 므라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는 제이슨 므라즈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이들이고, 일단 귀에 담은 뒤에는 흥얼대지 않을 수 없는 경쾌한 멜로디에 중독되어 버린 이들이다. 많은 이들이 ‘I’m yours’의 우쿨렐레에 중독되었고(빌보드 싱글 차트 76주를 기록했다), ‘Lucky’의 통기타에 ‘Make it mine’의 브라스에 중독되었다. 턴테이블이 돌아가는 동안, 고개는 좌로 우로 슬쩍슬쩍 움직이고 발끝은 리듬에 맞춰 춤춘다. 제이슨 므라즈의 목소리에는 무지개의 영롱함과 파도와도 같은 청량함, 밤새 꺼지지 않는 모닥불의 따뜻함이 담겨있다. We sing. 우리는 부른다. 무엇을. 말할 것도 없다. 무엇이라도 부르면 그건 노래다.

내게 제이슨 므라즈는 뭐랄까, 기타 입문자라면 거쳐야 할 코스 요리의 에피타이저와도 같았다. 나는 기타 학원 기초반 선생님이었고, 나의 학생들 대부분이 ‘I’m yours’에 매혹되어 등록한 상태였다. 음, 기초반에서는 곧장 본론으로 가기보다 기타의 원리와 명칭, 악보 보는 법부터……. 하나 둘 들려오는 하품 소리. 나는 슬쩍 여섯 줄의 마법사가 되어 펑키하면서도 팝적인 매혹의 노래를 부른다. 기초반 기타 선생님에게 제이슨 므라즈보다 유용한 교재는 없다.



We dance.

그래서였을 것이다. 제이슨 므라즈의 3집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가 세상에 나왔을 때 방방곡곡 그의 노래만 들려왔다. 라디오에서, 거리에서, 카페나, 마트에서까지.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제이슨 므라즈처럼 기타를 쳐보려 한다. 목을 앞으로 뒤로, 슬며시 끄덕끄덕, 눈썹을 치켜들고 기타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아직 노래를 부르기 전인데도 신이 난다. 이 사람은 정말 많은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이제 제이슨 므라즈가 가자는 데로 끌려간다.

한 장의 앨범 속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들어야 할 것 같은 음악과 기차를 타면서 듣기에 편안한, 비행기를, 자동차를, 아니 뭔가를 타지 않아도 그저 좋은 음악이 가득하다. 몸만 움직일 수 있다면, 마음만 움직일 수 있다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저편으로. 포크적인 감성에 더하여 즉흥성과 팝의 요소를 가진 제이슨 므라즈는 아이가 부르기에도 편한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단순하면서도 노련한 멜로디 라인과 친숙한 코드의 이음새가 유연하게 녹아있다. 이 사람 참 즐기고 있구나. 즐기는 데 못 당한다더니. 당해낼 재간 없이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제이슨 므라즈는 익살스럽게 우리를 인도한다.



We Steal Things.

앨범의 제목에 눈길이 간다.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 우리는 노래하고, 춤추다, 마지막에는 왜 훔치는(we steal things) 것일까. 아마도 그 대상(things)은 ‘sing’과 ‘dance’인듯 하다. 어느 샌가부터 제이슨 므라즈의 멜로디를 따라 노래 부르게 되었고, 리듬에 맞춰 춤추게 되었으니 이제 노래와 춤을 훔칠 차례. 만약 제이슨 므라즈의 생각처럼 되었다면, 그렇다, 이미 빠져나올 수 없는 활기 넘치는 므라즈의 세계에 편입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세상 모든 음악은 어쩌면 훔치는 존재다. 당신의 귀와 마음과 시간을 훔쳐 이전과는 다른 상태로 만들어놓는 존재.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은밀한 음악의 도둑질을 용납하고 용서한다. 아니, 제발 훔쳐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things’에 노래와 춤이 아닌 다른 것을 대입해도 좋지 않을까. 이를테면 사랑이나, 행복이나, 혹은 지금도 어디선가 제이슨 므라즈를 듣고 있을 당신의 그 활기를.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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